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절초당(節初堂). 아버지는 예조참판(禮曹參判)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유공양(柳公亮)이고,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 진사 민사온(閔思溫)의 딸이다. 최립(崔岦)과 이달(李達)에게 시문(詩文)을 배워 당시 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604년(선조 37)에 성균시(成均試), 1610년(광해군 2)에 사마시(司馬試)에 각각 합격하고, 영동(永同)·화순(和順)의 현감(縣監),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의빈부도정(儀賓府都正) 등을 역임하였으나,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에 동조하였다는 모함에 빠져 자기 아버지가 큰 화를 당하자 한 때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경기도 이천(利川)의 설봉산(雪峰山)에 숨어 시주(詩酒)를 벗삼아 세상을 오시(傲視: 오만하여 남을 깔봄)하기도 하였다.
외직(外職)에 있을 때는 그 고을에 향약(鄕約)을 반드시 실시하여 풍속 순화에 앞장 섰고, 따로 상평창(常平倉)이라는 것을 개설하여 흉년을 대비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절초당집(節初堂集)』 3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