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 윤승례(尹承禮)이다.
1383년(우왕 9) 문과 급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390년(공양왕 2) 우정언(右正言)이 되었다.
조선 태조 때 예조정랑을 지내고, 태종 때에는 내서사인(內書舍人)·형조좌참의로 있으면서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 형제의 불충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소를 올렸다.
1409년(태종 9) 병조참의를 지냈고, 다시 지신사(知申事) 황희(黃喜)의 추천으로 예방대언(禮房代言)·좌부대언(左副代言) 등을 거쳐 이조참의·경승부윤(敬承府尹)이 되었다.
윤규는 태종과 같은 해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였기 때문에 후대를 받았다. 글씨를 잘 썼는데, 특히 예서와 초서에 능하여 상서사(尙瑞司)의 직책을 겸임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파평부원군(坡平府院君)에 봉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