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과옹(果翁) 또는 주옹(周翁). 윤곤(尹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참의 윤희제(尹希齊)이다. 아버지는 목사 윤은(尹垠)이며, 어머니는 예빈시판관(禮賓寺判官) 이수상(李守常)의 딸이다.
1436년(세종 18) 14세의 나이로 정현옹주(貞顯翁主)와 결혼하여 영천군(鈴川君)에 봉하여지고, 점차 승계하여 자의대부·통헌대부가 되었다. 1452년(문종 2) 영천위(鈴川尉)로 개봉되었으며, 문종이 죽은 뒤에는 수릉관·빈전도감제조(殯殿都監提調)를 맡았다.
곧 이어 숭덕대부로 승계되었고, 1454년(단종 2) 광덕대부(光德大夫)로서 과전 70결을 받았다. 이듬해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협조한 공로로 수충위사동덕좌익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1456년(세조 2) 의정부좌찬성으로 의금부제조를 겸하면서 세조의 찬탈에 반대하던 일파를 추국(推鞫)하여 벌하였고, 이어 성록대부로 승계하였으며,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가 되었다. 이듬해 영천부원군(鈴川府院君)에 봉하여지고, 1461년 간경도감도제조(刊經都監都提調)가 되었고, 이듬해에 충훈부당상(忠勳府堂上)으로서 죽었다.
세태파악에 밝고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하여 현재에 유리한 쪽을 따르는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세조의 찬탈에 협조를 하였다. 또한, 그 공로로 작위가 올랐을 뿐만 아니라 사전도 많이 받았으며, 또 재물에 욕심이 있어 많은 재산을 모으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래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많은 사람이 따랐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