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상경(商卿), 호는 나헌(懶軒). 아버지는 우의정 윤호(尹壕)이며, 성종 계비(繼妃) 정현왕후(貞顯王后)의 오빠이다.
1483년(성종 14) 음보로 돈녕부봉사(敦寧府奉事)가 되었다가 1486년 무과에 장원하였으며, 4년 후에 궁마(弓馬)에 능숙하고 무재(武才)가 있다 하여 왕의 특명으로 4품에 올라 충훈부경력(忠勳府經歷)이 되었다. 1493년에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승진, 당상관에 올라 형 윤은로(尹殷老)와 함께 권세를 부리다가 사류로부터 배척받았다.
이듬해 훈련원 부정(副正)으로 있을 때 국상 중에 기방에 출입한 사실이 발각되어 파직, 부처되었다가 아버지의 병을 간호해야 한다는 명문으로 석방되었다. 1498년(연산군 4)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우익위를 거쳐 공조참의로 특진했으며, 좋은 매를 진상하는 채청사(採靑使)가 되어 연산군의 방탕을 조장하였다.
1506년 형조참판으로 밖에 있어 중종반정에 불참하였으나, 중종의 외삼촌으로서 잠저(潛邸) 때에 보필한 공이 있다는 왕의 배려로, 대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추록되고 파천군(坡川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이과(李顆)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참여한 공으로 공조판서로 승진하였으나, 대간의 배척으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물러났다. 훈척(勳戚)으로 권세를 부려 대간 등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시호는 영평(靈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