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상로(商老). 수원부사 윤처성(尹處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승문원참교(承文院參校) 윤면(尹沔)이다. 아버지는 첨정 윤훤(尹萱)이며, 어머니는 현감 김모(金模)의 딸이다. 영의정 윤은보(尹殷輔)의 동생이다.
1496년(연산군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04년(연산군 10) 진사로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508년(중종 3) 부교리, 1511년 장령(掌令), 이듬해 부응교 등을 거쳐 1517년 대사간이 되었다. 이듬해 직제학을 거쳐 1519년 예조참의·승지가 되었다.
이 때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趙光祖) 등이 죽음을 당하게 되자 조광조를 옹호하였다. 1522년 첨지중추부사, 이듬해 황해도관찰사, 1527년에는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530년에 도승지·부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며, 1532년 동지중추부사로서 동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대사성을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나아갔다. 벼슬은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헌간(憲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