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1994년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25번 국도를 따라 선산읍으로 향하는 낙산리 큰길가에 있다. 1655년(현종 6) 선산부사 안응창(安應昌)이 근찬(謹撰 : 삼가 지음)했다는 『의열도(義烈圖)』 의구전조(義狗傳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유래담이 전한다.
선산부 동쪽 연향(延香)에 사는 우리(郵吏 : 역참의 아전)가 집에 누른 개 한 마리를 길렀는데 이 개가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알고, 주인의 동정을 잘 살펴 늘 주위를 떠나지 아니하였다. 주인이 하루는 이웃마을에 갔다가 술에 취하여 돌아오는 길에 월파정(月波亭) 북쪽 큰길가에서 그만 말에서 떨어져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때마침 들에 불이 나서 삽시간에 주인이 위험하게 되자 개는 놀라 수백 보나 되는 낙동강에 뛰어가서 꼬리를 물에 적셔 와서 불을 끄고 기진맥진하여 죽어버렸다.
주인이 술이 깨어 일어나 보니 개는 죽었는데 꼬리는 그을었고, 사방이 불에 탄 흔적이 역역한 지라, 비로소 개가 자기를 구하고 죽었음을 깨닫고, 감동하여 사체를 거두어 묻어 주었다.
훗날 사람들이 그 의로움을 기려서 그곳을 구분방(狗墳坊)이라 하니 지금도 행로 가에 그 무덤이 있다고 하였다. 방치되어 있던 무덤을 1994년 선산군에서 향토문화재(현, 향토유산) 보전과 국민의 사회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깨끗하게 정비하였다. 봉분은 직경 2m, 높이 1.1m이다.
의구총은 1952년 도로에 편입되어 공사중 비(碑) 일부가 파괴된 것을 봉분과 아울러 수습하여 일선리(一善里) 마을 뒷산에 이장하여 유지하였으나 또다시 일선리 마을이 조성되자 원래의 위치에 가까운 이곳에 이장하고 말끔히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에 전하기를 우리(郵吏)는 노성원(盧聲遠) 혹은 김성발(金聲發)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