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언성(彦誠), 호는 두곡(杜谷). 할아버지는 영의정 이탁(李鐸)이고, 아버지는 이조참의 이해수(李海壽)이다. 어머니는 군수 정유의(鄭惟義)의 딸이다.
김상용(金尙容)·홍서봉(洪瑞鳳)·윤안국(尹安國)·성여학(成汝學) 등과 교유하였다.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여 봉사를 거쳐 직장이 되었으나, 1591년 아버지가 종성에 유배되자 아버지를 따라가기 위하여 사직하였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의주까지 피난하게 되자, 이들 부자는 의주의 행재소(行在所)에서 왕을 배알하고 사면을 받아 다시 직장이 되었고, 이어서 별좌·감찰을 거쳐 공조·형조의 좌랑을 지냈다.
그 뒤 광해군의 난정(亂政)으로 관직을 떠나 향리에 묻혀서, 아들 이성신(李省身)과 이안진(李安眞) 등 여러 사람에게 폐모론을 일으키는 적신(賊臣)들을 성토하도록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는 공조정랑·사복시첨정·장악원정 등을 지내고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인품이 무사공평하고 풍류를 즐겼으며 시문과 그림에 능하였다. 우의정에 추증되었고, 1604년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