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휘백(輝伯). 보은현감 이하악(李河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만(李世萬)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 이의저(李宜著)이며, 어머니는 정정양(鄭正陽)의 딸이다.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벼슬에 나아가서는 지평·정언·교리·집의 등을 거쳐, 대사헌·종성부사(鐘城府使)·나주목사(羅州牧使)·승지·의주부윤(義州府尹) 등을 역임하였다.
1723년(경종 3)에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의 세제책봉(世弟冊封)을 둘러싼 신임옥사(辛壬獄事)가 일어나자, 지평이었던 이보욱은 이만성(李晩成) 등이 노론 4대신의 흉역(凶逆)에 참여하였다 하여 국문하기를 청하였다.
또 신임옥을 고변한 목호룡(睦虎龍)만이 단신으로 녹훈(錄勳)되자, 국조 300년에 고변자가 단독으로 원훈(元勳: 나라를 위해 가장 큰 공을 세움.)된 예는 없다 하여 마땅히 옥사를 다스린 여러 신하들이 함께 녹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때 옥사를 담당한 대신들이 모두 소론이었던 만큼, 영조 즉위로 노론이 득세하자 김일경(金一鏡)·목호룡의 여당으로 몰려 탄핵을 받고 유배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