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이교악(李喬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준(李世準)이다. 아버지는 이의로(李宜老)이며, 어머니는 조화벽(趙和壁)의 딸이다.
1771년(영조 4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보온(李普溫)·홍상성(洪相聖)·이규위(李奎緯)·안성빈(安聖彬) 등과 함께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권점(圈點)되었다.
1775년(영조 51)에 정조가 세손으로서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게 되었을 때, 예를 행하던 날 숙배(肅拜)에 참여하지 못하여 향리로 방축(放逐)되었다. 이 때 지평 홍낙항(洪樂恒)이 이를 김상익(金相翊)·송형중(宋瑩中)·박종집(朴宗集) 등과 연관시켜, 김상익의 지시에 의하여 고의로 그런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보천은 단양(丹陽)에 휴가를 받아 내려갔다가 급히 상경하였다고 상소하였다.
또한 1801년(순조 1)에는 전라감사 윤행임(尹行恁)이 문형(文衡: 문사에 관한 관직으로 대제학을 이름.)과 전병(銓柄: 전랑의 선발권이나 추천권)을 오로지 차지하고 있을 때 공의(公議)를 저버리고 사사로움을 좇아 가까운 친·인척을 천거하였다고 탄핵되었는데, 이보천 또한 여기에 관계되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검열·좌부승지·대사간·형조판서·한성판윤·의정부좌참찬·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