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익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안동부사, 강릉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사휘(士輝)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71년(현종 12)
사망 연도
1743년(영조 19)
본관
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주요 관직
예조참판|안동부사|강릉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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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안동부사, 강릉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사휘(士輝). 이형(李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동백(李東白)이고, 아버지는 이보(李誧)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0년(숙종 36)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주서·설서·지평·정언·장령·집의·헌납·사간·보덕·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719년(숙종 45)에 집의로서 관소(館所)의 예를 다툰 승선(承宣) 조명봉(趙鳴鳳)·궁관(宮官) 박성로(朴聖輅)·홍용조(洪龍祚) 및 역관(譯官) 등을 엄히 다스리도록 청하고, 헌납이 되어서는 경리청(經理廳)의 폐해를 들어 혁파론을 상소하여 조정논의를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또 승정원 규례에 따라 전지(傳旨)를 받지 않은 비국낭청(備局郎廳)을 파직하도록 청하였는데, 이를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이 오히려 임용하자 이에 대한 부당함을 상소하였다. 또 승정원에 내린 비망기(備忘記: 왕이 몰래 내리는 명령) 중에 도리에 어긋남이 있다 하여 이를 도로 거두도록 직소하기도 하였다.

그 뒤 예조참판·안동부사·강릉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724년(영조 즉위)에는 어영청(御營廳)의 군수(軍需)를 탕감한 어영대장 이삼(李森)을 치죄하도록 상소하였는데, 이는 대개 이삼이 김일경(金一鏡)의 당여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좌의정 유봉휘(柳鳳輝)·이사상(李師尙)·김창집 등의 징벌을 주창하여, 김창집 등은 정계(停啓)되고 이사상은 정배(定配)되기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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