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아버지는 감역 이사길(李師吉)이다.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힘과 담략이 뛰어나, 병조판서 김구(金傋)의 천거로 1705년(숙종 31) 무과에 급제하였다.
1713년 정주목사로 임명된 뒤, 1717년 평안도병마절도사·함경남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내면서 친기위(親騎衛)의 인원증액과 봉수제도의 개선을 건의하는 등 군제개혁에 관심을 기울였다. 경종의 신임을 받아 수원부사·우포도대장·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1721년(경종 1) 총융사·한성부우윤, 1724년 어영대장 등을 지냈다.
1727년(영조 3) 훈련대장이 되어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관문을 잘 지킨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함은군(咸恩君)에 봉하여졌다. 1729년 벼슬이 병조판서에 올랐다. 지리의 이용과 기계의 제조, 여러 무술에 두루 능통하였으며, 저서로는 『관서절요(關西節要)』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