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계수(季受). 이덕형(李德馨)의 5대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이상정(李象鼎)이다. 아버지는 이윤적(李允迪)이며, 어머니는 응교(應敎) 조위봉(趙威鳳)의 딸이다. 종조숙부인 이상겸(李象謙)에게 입양되었다. 권유(權愈)의 문인이다.
1690년(숙종 16) 진사시에 합격하고, 1707년 경녕전참봉(敬寧殿參奉)을 거쳐 1709년에는 제용감봉사가 되고, 이듬해는 상서원직장이 되었다. 1711년 공조좌랑으로 있을 때 노론측 간관들의 탄핵을 받아 한때 파직되었다.
1721년(경종 1) 소론이 집권하게 되자 내섬시주부(內贍寺主簿)에 등용되었고 외직으로 나아가 창평·익산·김포의 수령을 역임하였으며, 뒤에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전주판관이 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반란군을 물리친 공으로 품계가 올랐으나, 노론측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어 반대에 부딪혀 관직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