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퇴숙(退叔). 종실 안남도정(安南都正) 이수련(李壽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천군(瑩川君) 이정(李挺)이다. 아버지는 이세헌(李世憲)이며, 어머니는 이찬(李璨)의 딸이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지평·정언·장령·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664년(현종 5) 서필원(徐必遠)의 상소를 두고 준론(峻論: 강경한 대처론)과 완론(緩論: 온건한 대처론) 사이에 의논이 분분하여지면서 점차 격렬해지자, 이를 정계(停啓: 계문 올리는 것을 중지함.)시키고자 노력하였다.
1671년(현종 12)에는 각 도에 기근과 전염병이 크게 돌아 많은 백성들이 죽어 가는데 수령들의 보고만을 믿고 더 유의하여 깊이 살피지 아니하는 관찰사들을 파직하도록 탄핵하기도 하였다. 또 이 때를 당하여 재판이 지체되는 폐단이 심하므로 옥에 갇힌 죄인을 오래 머물러 두고 판결하지 않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1667년에는 청주목사(淸州牧使)로서 청주에 수감되어 있던 살인한 죄인이 신문을 받고 형의 확정을 받은 뒤, 거짓으로 옥중에서 죽자 곧바로 시친(屍親)에게 내어 주었는데, 여러 달 도망하였다가 발각이 되었다. 이에 이를 제대로 검시하지도 않은 채 일을 처리하였다 하여 탄핵당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