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시중(時中). 호는 정묵재(鄭默齋). 이진경(李眞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지형(李枝馨)이다. 아버지는 이세연(李世延)이며, 어머니는 홍수관(洪受寬)의 딸이다. 이세운(李世運)에게 입양되었다.
1692년(숙종 18)에 성균관 유생들에게 보이는 시험에서 장원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문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필선·장령 등을 거쳐 배천군수(白川郡守)·삼척부사(三陟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700년(숙종 26)에 정언으로서, 경상감사 유집일(兪集一)을 공격하여 공적도 없이 책망만을 초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또 동궁(東宮: 세자)을 모해한 일로 윤순명(尹順命)을 추국하는 신사옥(辛巳獄)에 문사낭청(問事郎廳)으로 참가하였는데, 당시의 추국 내용에 의혹이 제기됨으로써 당시 문사낭청들이었던 윤헌주(尹憲柱)·심택현(沈宅賢)·여필중(呂必重)·유언명(兪彦明) 등과 함께 오히려 형신(刑訊: 죄인을 신문할 때 形杖을 치면서 신문함.) 당하는 처지가 되기도 하였다.
1717년(숙종 43)에 승지가 되어 영의정으로 추증된 김장생(金長生)의 사당에 유고(諭告)하였고, 1725년(영조 1)에 사직(司直)이 되어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고, 사령(辭令: 응대하는 언어 또는 논리)을 삼가며, 징토(懲討: 징계와 토벌)를 엄격히 하고, 붕당(朋黨)을 타파하기 위해서 당론(黨論)을 의심하기 보다는 현사(賢邪: 현명한 인물과 사악한 인물)를 잘 구별해야 한다는 5조목의 계(啓)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 뒤 병조참의·광주부윤(廣州府尹)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