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명원(明遠). 중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이다. 아버지는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이며, 어머니는 나주박씨(羅州朴氏)로 박간(朴諫)의 딸이다.
15세에 예에 따라 구천부정(龜川副正)을 제수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국왕을 호종하였다가, 분조(分朝)의 명에 따라 선전관에 제배되어 광해군을 따랐다. 1615년(광해군 7) 사옹원제조를 겸하였다.
1617년 이성윤(李誠胤)과 함께 상소하여 이이첨(李爾瞻) 등의 죄를 극렬히 논하고, 윤선도(尹善道) 등을 변호하다가 순천에 유배되었다. 1621년 유배에서 풀려났으며, 1623년(인조 1)의 인조반정으로 관직에 복귀되어 다시 사옹원제조가 되었다.
반정 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 국왕이 공주로 피난할 때 호종하였으며, 정묘호란 때 강화도로 또한 어가(御駕)를 호종하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올랐다. 죽은 뒤 현록대부(顯祿大夫)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숙(忠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