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대수(大叟). 이공전(李恭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재(李梓)이다. 아버지는 이맹사(李孟思)이며, 어머니는 예조참의 이승소(李承召)의 딸이다.
1506년(연산군 12) 별시문과에 정과(丁科)로 급제하여 정언·지평·헌납·부응교·장령, 시강원보덕·호조참판·경주부윤·병조참판·제주목사·경기도 관찰사·충청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516년(중종 11) 함경도도사(咸鏡道都事)로 근무하면서 도내의 민간인들이 이익을 보려고 곡식을 많이 사들이고 있는 폐단과 역로(驛路)의 피폐, 국방의 어려움을 백성들이 견뎌내기 어렵다 하여 이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1523년에는 장령으로서 관직자 천거제(薦擧制)의 폐단이 모두 사사로운 데서 나왔기 때문이라면서 “이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공(公)에서 나오도록 한다면 유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1526년 제주목사가 되어서는 유행병으로 도내 백성들의 병세가 심하여 구급약을 중앙에 계청(啓請)하였고, 1535년 충청감사가 되어서는 지조와 효행이 뛰어난 백성들을 포상하기를 청하고 민생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건의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