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인로(仁老). 정언 이주(李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서 이광정(李光庭)이다. 아버지는 이도(李禂)이며, 어머니는 조민(趙珉)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현령(縣令)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일찍이 현령으로 선정을 하여 충청도암행어사 이인환(李寅煥)이 올린 서계(書啓)에 따라 표리(表裏: 옷감) 1습이 하사되었다.
정언·지평·사간·장령을 거쳐 1689년(숙종 15) 지평이 되었다. 이 때 경신옥사(庚申獄事)의 신원(伸寃: 억울함을 풀어버림.)을 주장하고, 또 송시열(宋時烈)이 죄를 입을 당시 대신(臺臣)으로 참여한 것이 빌미가 되어, 이후 노론집권(老論執權) 하에서 역(逆)으로 몰려 변방에 유배당하기도 하였다.
방면되어서는 승지·참판, 개성유수(開城留守)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이수징의 경신옥에 관한 일은 60~70여 년이 지난 1751년(영조 27)까지도 이어져, 손자 이만회(李萬澮) 등이 대적(臺籍)에 들어 있다 하여 개정(改正)을 요구하는 노론측의 상소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