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사간, 승지,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인로(仁老)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2년(인조 10)
사망 연도
1702년(숙종 38)
본관
연안(延安)
주요 관직
정언|지평|사간|장령
관련 사건
경신옥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 승지,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인로(仁老). 정언 이주(李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서 이광정(李光庭)이다. 아버지는 이도(李禂)이며, 어머니는 조민(趙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8년(숙종 4) 현령(縣令)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일찍이 현령으로 선정을 하여 충청도암행어사 이인환(李寅煥)이 올린 서계(書啓)에 따라 표리(表裏: 옷감) 1습이 하사되었다.

정언·지평·사간·장령을 거쳐 1689년(숙종 15) 지평이 되었다. 이 때 경신옥사(庚申獄事)의 신원(伸寃: 억울함을 풀어버림.)을 주장하고, 또 송시열(宋時烈)이 죄를 입을 당시 대신(臺臣)으로 참여한 것이 빌미가 되어, 이후 노론집권(老論執權) 하에서 역(逆)으로 몰려 변방에 유배당하기도 하였다.

방면되어서는 승지·참판, 개성유수(開城留守)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이수징의 경신옥에 관한 일은 60~70여 년이 지난 1751년(영조 27)까지도 이어져, 손자 이만회(李萬澮) 등이 대적(臺籍)에 들어 있다 하여 개정(改正)을 요구하는 노론측의 상소가 계속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