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계지(繼之). 사헌부집의 이현우(李玄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감무(監務) 이자보(李自寶)이고, 아버지는 선략장군호분위호군(宣略將軍虎賁衛護軍)으로 병조판서에 추증된 이극명(李克明)이며, 어머니는 통사랑(通仕郞) 정혼(鄭渾)의 딸이다.
1460년(세조 6) 7월 별시 무과에 급제하여 종5품 창신교위(彰信校尉)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10월 북정(北征) 도원수 신숙주(申叔舟)의 군관(軍官)으로 공을 세워 선략장군에 제수되었다. 1461년 5월 도시(都試)에 1등으로 합격하여 선절장군(宣節將軍)이 되어 수직(守職: 자신의 품계보다 높은 관직)으로 의흥위대호군(義興衛大護軍)이 되었다.
1464년 어모장군(禦侮將軍)이 되어 동관진첨절제사(潼關鎭僉節制使)가 되고, 1466년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북청 만령(蔓嶺)에서 위장(衛將)으로서 선봉에서 적(賊)을 대파한 공으로 개선 후에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록되고 함성군(咸城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건주위(建州衛) 야인을 친 공으로 영변대도호부사가 되었으며, 1469년(예종 1) 한성좌윤·평안동서중3도절도사(平安東西中三道節度使)가 되었고, 1471년(성종 2) 도총관을 겸하였다.
1473년 내금위장이 되었다가 이어 충청도병사가 되었다. 1479년 윤필상(尹弼商)의 건주위 정벌 때 호분위장(虎賁衛將)으로 출전해 공을 세웠다. 1481년 영안남도병사 겸 북청도호부사, 1485년 경상우병사, 1491년 겸사복장(兼司僕將)이 되었고, 1495년(연산군 1) 부총관을 겸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정직하고 관후하며, 직무를 이행함에 있어 대세를 따르고, 사람을 부드럽게 대했다. 명장으로 주덕(酒德)을 겸했다는 평을 들었다. 시호는 장양(莊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