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진(子眞), 호는 청하자(靑霞子). 7대를 이은 명문출신으로 어머니 이씨(李氏)가 꿈에 도사를 나타내는 노란색의 관을 보고 임신하였다. 어려서부터 유학을 닦는 한편 도장(道藏)을 탐독하고 도풍(道風)을 섬겼다.
출가하여 가야산에 은거하며 스스로 청하자라 칭하고 수련을 쌓다가, 나중에 처사(處士) 은원충(殷元忠)과 선사(禪師) 익종(翼宗)의 주선으로 월출산으로 옮겨 일재(逸齋)를 짓고, 『황정경 黃庭經』에 의지하며 부상공(夫桑公, 少明)·도은거(陶隱居, 弘景)·장천사(張天師, 道陵) 등을 받들어 연단수련(鍊丹修鍊)을 하였다.
도교의술(道敎醫術)에 정통하여 조야에 명성을 얻었으며, 숙종의 치료를 위하여 상경한 뒤, 궁중에서 태자를 시봉하다가 예종이 즉위함에 따라 조정에 등용되었다.
1108년(예종 3) 입송사절(入宋使節)인 예부시랑 한교여(韓皦如)를 따라 송나라에 건너가 법사 황대충(黃大忠)·주여령(周與齡)에게 도교 요체를 전수하는 한편, 송나라 휘종(徽宗)에게 청원하여 도사 2명을 고려에 파견시켰다.
귀국 후 상소하여 국가 재초소(齋醮所)로 도관 복원궁(福源宮)을 건립하였다. 고려 도교의 총본산인 이 복원궁을 중심으로 예종을 통하여 도교정책을 펴다가 1122년 권신 이자겸(李資謙)의 세력에 의한 한안인(韓安仁) 일파 축출시에 연루되어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신원되어 생전의 합문지후(閤門祗候)에서 좌사(左司)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