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규성(奎星).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의 용안(龍安)에서 출생하여 충청남도 강경(江景)의 외가에서 성장하였다. 1938년에 서울로 올라와 동양극장 중심의 무대미술 일을 하기 전에 대전의 양화가 권중록(權重祿)에게 그림 지도를 받았다.
광복 직후인 1947년부터 초급 및 중등 미술 교과서(검인정) 출판을 시작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1951년에는 문화교육출판사를 설립하여 각종 미술 서적을 간행했다. 1956년에는 또 하나의 출판사로 신미술사를 설립, 비정기 잡지 『신미술(新美術)』을 12호(1959년)까지 발간하며 미술계 발전에 기여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본래의 뜻이었던 화가 생활도 병행, 현대적 판화 작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6·25 전쟁 시기인 1951년 첫 다색 석판화 개인전에 이어 1958년에 두 번째 판화 개인전을 가짐과 함께 유강렬(劉康烈) · 정규(鄭圭) · 최영림(崔榮林) · 김정자 · 이상욱(李相郁) 등과 최초의 한국판화협회 결성을 주도하였고, 회장이 되어 첫 회원 작품전도 꾸몄다.
1959년에는 미국 신시내티(Cincinnati) 미술관 국제판화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석판화 「다정불심(多情佛心)」이 입상하여 판화가로서의 위상을 국내외적으로 굳혔다. 불교적인 전용 의식과 한문 글귀의 회화적 형상화 등으로 동양적인 표현 감정과 정신성을 내재시킨 판화 작업은 생애를 통해 일관되게 지속되었다.
만년에는 목판화와 실크 스크린(silkscreen) 기법을 즐기며, 「염(念)」 · 「정(情)」 · 「사(思)」 · 「심(心)」 등으로 명제한 심정적인 연작을 남겼다. 판화가로서의 다채롭고 뚜렷한 작품 업적은 1950년대부터 유화 및 혼합 재료의 캔버스 작업과 병행되었다.
후자의 화면 창조는 초기의 추상 표현주의 지향을 거쳐 1970년에 파리에서 국제적으로 활동한 이후에는 독특한 방법으로 동양적 형상성과 신비감의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곧, 캔버스에 여러 성질의 한지를 자유롭게 붙이어 그 자체로 조형적 요소가 되게 하고, 그 위에 먹물 · 유화 물감 · 동양화 물감 · 염색 물감 등을 적절히 이용하여 색상을 조화시킨 순수한 추상 화면 창출이었다.
그러한 작품들로 파리와 퀼른 · 프랑크푸르트 · 밀라노를 비롯한 유럽 주요도시와 미국의 뉴욕 ·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일본 동경 등지의 유명 화랑과 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잇달아 가지며 열정적으로 국제적 활동을 보임으로써 많은 찬사를 받았다.
1980년대에는 특히 국제 사회의 여러 비극적 대형 사건을 주제 삼아 평화의 염원을 담은 대작을 연작하여 주목을 받았다. 1992년 한국 유엔 가입 1주년 때에 유엔 산하 유니세프(UNICEF) 본부에 기증한 「평화 명상지념(瞑想之念)」은 1980년대의 한국 민간 항공기 KAL의 공중 폭파 사건의 비극을 애도한 평화 염원의 대표적 역작이다. 1996년에는 프랑스 리용시 초대로 마지막 개인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