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유문(幼文). 이동일(李東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제(李제)이고, 아버지는 이수태(李壽泰)이며, 어머니는 유덕삼(柳德三)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48년에는 설서(說書)를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1751년에는 교리(校理)와 지평(持平)을 지냈다. 1763년에는 사간을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집의(執義)를 역임하였다.
1770년에는 사간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영조의 난장형(亂杖刑: 매로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마구 치는 형벌) 폐지를 찬성하고, 나아가 해도(海島)의 유배 역시 경감시켜 줄 것을 주청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