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현도(顯道). 이서우(李瑞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형(李泂)이고, 아버지는 이병덕(李秉德)이며, 어머니는 신공화(申拱華)의 딸이다.
1743년(영조 1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48년(영조 24)에는 겸설서(兼說書)를 지냈다. 1750년에는 설서·정언(正言)·부교리(副校理)·교리(校理)를 역임하면서 화평옹주(和平翁主)의 집을 방문하지 말 것을 주청하였다.
1751년에는 겸사서(兼司書)와 수찬(修撰)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영조의 언로 차단을 비판하였다. 1754년에는 수찬과 교리를 역임했고, 1756년에는 호남 지역을 암행하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1761년에는 승지를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강진(康津)으로 유배갔다가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