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동(子東). 이후원(李厚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주(李週)이고, 아버지는 이산휘(李山輝)이며, 어머니는 홍처후(洪處厚)의 딸이다.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7년에는 대교(待敎)·겸설서(兼說書)·병조좌랑(兵曹佐郞)을 역임하면서 붕당의 폐해를 지적하였다. 1729년에는 지평(持平)을 지냈으며, 홍문록(弘文錄)에 등록되었고, 초지제교(抄知製敎) 29인 중 일원으로 선발되기도 하였다.
1730년에는 이조정랑을 역임했고, 이듬해에는 헌납(獻納)·부수찬(副修撰)을 지냈고, 1732년에는 부수찬·부교리·교리를 역임하였다. 그 뒤 이듬해 응교(應敎)·사간으로서 활동하다가 양산군수를 제수받기도 하였다. 1734년에는 동래부사로 파견되었으며, 이듬해에는 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738년에는 승지의 직책을 수행하던 중에 동지부사(冬至副使)로서 정사(正使) 조현명(趙顯命)과 서장관(書狀官) 김광세(金光世)와 함께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어 대사성(大司成)·이조참의·승지를 역임하였고, 1740년에는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