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각 1인씩이 있었다. 1448년(세종 30)에 세손강서원의 4인을 홍문관 관원이 겸직하여 매 1인이 입직시강(入直侍講)하였으나 뒤에는 좌익선(左翊善)을 실직(實職)으로 삼아 시종하게 하였다.
인조대에는 세자보양관(世子輔養官)의 예에 따라 겸직하였으며, 그 순차는 문학 다음으로 정하였다. 1648년(인조 26) 이후에는 그 명칭이 진선(進善)으로 바뀌어 송시열(宋時烈)이 시초가 되었다. →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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