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의 부농 주거로 남북으로 긴 장방형 대지 위에 큰집과 작은집이 앞뒤로 나란히 북향해 건립되어 있다.
큰집에는 안채, 사랑채, 곳간채, 안 문간채, 바깥 문간채 솟을대문 등이 있으며 작은집은 큰집에 비해 곳간채만 없을 뿐 집의 규모나 격식에 큰 차이가 없다. 각 채의 건립 년대는 큰집 안채 1861년, 사랑채 1879년, 작은집 안채 1881년, 사랑채 1903년이다.
집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큰집의 안채는 팔작지붕의 一자형 홑집이다. 남부지방의 일반적인 민가의 간살과 같이 부엌 · 안방 · 대청 · 건넌방 순으로 실이 구성되어 있다. 큰방과 부엌의 한쪽 모퉁이에 부엌방이 있으며 그 옆에 도장이 있다.
건넌방은 전면에 벽장을 달아 심벽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며 측면은 툇마루를 두었다. 안채 전면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곳간채가 마주한다.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며 억새로 지붕을 이어 물매가 다소 급하다. 각각 2칸의 곳간과 헛간, 그리고 온돌방이 있으며 헛간에는 디딜방아가 놓여져 있다.
사랑채는 안채 동쪽에 문간채들과 함께 별도의 일곽을 이룬다. 一자형 팔작집이며 칸살은 좌측부터 큰방 · 대청 · 건넌방으로 구성되었다. 전면과 측면에 모두 툇마루가 있으며 안방 뒤에는 조그만 골방을 덧달아 내었다. 이와 같이 큰방 뒤쪽에 골방이나 도장방을 만든 것은 이집의 공통된 특징이다. 작은집은 큰집과는 달리 각 건물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一자집이며 부엌 · 큰방 · 대청 · 건넌방 순으로 구성되어, 큰집 안채와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대청의 규모가 1칸이고 건넌방 뒤쪽에 도장방이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사랑채는 ㄱ자집으로 전면에 돌출한 누마루까지 갖추고 있어 큰집보다도 더 격식을 갖추었다. 왼쪽부터 부엌과 골방 · 안방 · 대청 · 건넌방과 윗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넌방 앞에 누마루가 위치한다. 삼면에 세살문이 있고 누마루 주위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안 문간채가 있어 남녀유별(男女有別)에 따라 공간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안 문간채는 억새로 지붕을 이은 샛집이나 나머지는 모두 기와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