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지방의 서반아전.
이칭
이칭
일수양반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 지방의 서반아전.
내용

지방의 각 관아나 역에서 잡무에 종사하던 자로 일수양반(日守兩班)이라고도 하였다. 이들은 관일수(官日守)와 역일수(驛日守)로 구분되었는데 각 관과 역의 대소에 따라 그 정액이 고정되어 있었다.

『경국대전』 병전 외아전조에 의하면, ‘부(府)에 44인, 대도호부에 40인, 목에 40인, 도호부에 36인, 군에 32인, 현에 28인’이라 하여 전국 330여 개에 달하는 지방관아에 총 1만여 인의 관일수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역시『경국대전』에 의하면 ‘대로에 20인, 중로에 15인, 소로에 10인’이라 하여 전국 540여개를 상회하는 각 역참에는 약 6,000여 인의 역일수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양인신분으로 충당되었는데 그 수가 부족한 경우에는 관이나 역 근처에 거주하는 한역인(閑役人)이나 향리 등으로도 충원되었다. 이들은 지방관아와 역에서 많은 잡무에 종사하였던 만큼 그 입역 실태는 고역이었다.

이들이 부담하였던 역의 형태는 지방관아의 영조(營造)와 영선, 수령 및 국내외 사객의 접대와 영송, 국둔전·관둔전·제역전 등의 경작, 답험손실 및 향역의 보조업무 수행 등 다양하였다. 이들의 역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더욱 고역화되어 가장 대표적인 천역인 칠반천역(七班賤役)의 하나가 되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반계수록(磻溪隨錄)』
「조선초기(朝鮮初期)의 일수(日守)」(한희숙, 『진단학보』 65, 1988)
「조선전기(朝鮮前期) 역리(驛吏)에 대한 일고」(조병로, 『남도영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태학사, 1985)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