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은 북한 지역 강원도 법동군 마식령 산맥에서 발원하여 북한 개성시와 경기도 파주시 사이에서 한강으로 유입되어 황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한강의 제1지류이며, 연천군에서 대표적인 지류인 한탄강이 합류된다. 유역면적은 북한 지역이 약 63%, 남한 지역이 37%를 차지하고 있으며, 북한 지역이 상류~중류 구간, 남한 지역이 하류 구간에 해당한다. 신생대 제4기에 분출한 현무암 용암대지가 유로 곳곳에 존재하며, 이와 연관된 구석기 유적이 확인된다. 북한 지역의 상류부에 황강댐이 건설되어 있어 치수 등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옛날에는 더덜나루(다달나루)라 하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임진강이라 하였다. 임진강의 ‘임(臨)’은 ‘더덜’ 즉 ‘다닫다’라는 뜻이며 ‘진(津)’은 ‘나루’라는 뜻이다. 그 밖에 ‘이진매’ 즉 ‘더덜매’(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이라고도 하였다.
임진강의 길이는 254㎞이고 유역 면적은 8,118㎢로서 북한에서 9번째로 넓은 유역 면적을 갖고 있으며, 한강의 제1지류이다. 전체 유역 면적 중 남한 지역이 약 3,008㎢, 북한 지역이 5,108.8㎢를 차지하고 있다. 강원도 북부를 흐르면서 고미탄천(古味呑川)과 평안천(平安川)을 합류하고, 경기도 연천군에서 철원 · 평강 등을 흘러온 한탄강(漢灘江)과 합류한다. 고랑포를 지나 문산 일대의 저평지를 흐르는 문산천과 합치고 하구에서 한강과 합류하여 황해로 흘러든다.
국토가 분단되기 이전까지는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고 소형 선박은 안협(安峽)까지 운항할 수 있었다. 강의 중상류 지역은 경기도의 동북단으로 황해도 · 강원도 등과 인접하며, 동쪽으로는 광주산맥의 지맥이 뻗어 지장봉(地藏峰, 877m) · 보개산(寶蓋山, 724m) · 향로봉 등 일련의 험준한 산이 있다.
추가령 주1을 사이에 두고 마식령산맥과 마주하며 그 지구대를 임진강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차탄천(車灘川) · 한탄강 등을 합치면서 적성 부근에서 유로를 서남쪽으로 바꾼다. 주2 제4기 동안 분출한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용암 주3가 유로를 따라서 곳곳에 분포하며, 그 주변의 기반암은 형성 시기가 다양한 화산암류와 주4 및 주5 계통이 주를 이룬다. 이들 하천이 합류된 유역에는 비교적 비옥한 평지를 많이 만들어서 쌀 · 밀 · 조 · 옥수수 · 고추 · 잎담배 등의 생산이 많다. 하류 유역에는 파주시 · 장단군 등이 있으며 한강과 함께 넓은 주6를 형성한다.
임진강의 상류는 소나무, 참나무를 기본으로 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임진강의 연평균 흐름양은 266㎥/s이며 유출률은 33ℓ/(s · ㎢), 연유출 높이는 1,031㎜, 연유출 계수는 0.7, 연 증발량은 452㎜이다. 연평균 강수량이 1,483㎜로서 강수량이 많은 지대이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식량 부족을 메우기 위해 옥수수를 재배하는 밭을 만들고 땔감을 위한 삼림 벌채를 하여 토사가 하천으로 유입되어 토양의 유실량이 많아졌다.
임진강 유역에 널리 분포하는 현무암 중심의 용얌 대지는 신생대 제4기 주7 중기의 종식 무렵 점성이 낮은 현무암이 분출하며 기존 지형 기복을 채우면서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암층 상부로는 플라이스토세 후기 주8와 주9가 반복되면서 하천 및 바람에 의해 공급된 퇴적물이 퇴적되어 현재와 같은 퇴적층이 만들어졌다고 해석되는 연구가 있다.
그리고 임진강 하류인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일대에 한탄강과 임진강 유역에 용암 대지가 만들어지기 전에 형성된 하천 주10 내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이 유물은 용암 대지 말단부보다 하류에 위치하며 이 유물이 발견되는 퇴적층이 용암 대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쌓인 것이라는 단서가 된다는 연구도 있다. 이 하안단구와 용암 대지 하부에 있는 용암 분출 이전에 퇴적되었던 미고화 퇴적층인 백의리층 사이의 층서 관계는 불확실하나 앞으로의 구석기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임진강 일대는 북한과의 접경 지역에 속해 현재에도 용암 분출과 구석기 유적의 관계가 명확하게 해석되지는 못한 상태이며, 임진강의 지류인 한탄강을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예로부터 임진강 유역은 고구려 · 백제 · 신라 3국의 국경이 되어 역사적인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삼국시대에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연천군에는 고구려 칠중현의 치소인 칠중성(七重城)이 있었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이 강에서 백제군을 대파시킨 일이 있고, 신라 진흥왕은 이 강의 남쪽을 점령하여 고구려와 경계한 적이 있었다. 신라가 당나라와 더불어 고구려를 정복하였을 때에는 칠중성 부근에서 이 강을 건너 평양으로 진격한 일이 있다.
강 하류 쪽의 파주시 중심지인 금촌동 일대는 토지가 비옥할 뿐 아니라 농산물이 풍부하고 소하천들이 많이 발달하고 있어 소규모의 주11도 행하여졌다. 현재는 대규모 시가지가 건설되어 있다. 문산읍은 경의선의 종점이며 판문점이 있어 남북 분단의 상징이며 군사상의 요충지가 되고 있다.
봉서산(鳳棲山, 216m)은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이 산정에 산성을 쌓아 역사적으로 알려졌다. 문산 서북쪽의 임진진(臨津鎭)은 수도 서울을 방위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연천군 전곡읍에서 중요한 지류인 한탄강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르는데, 그 전곡읍 전곡리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임진강 유역의 연천군은 본래 38선 이북이 되어 군정 주12 제22호에 따라 38선 이남에 남은 지역을 파주군(현, 파주시)으로 편입시켰다가 1954년 10월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대체로 지금과 같은 행정구역을 갖추게 되었다.
장단군의 고랑포는 편리한 주운 때문에 물산의 집산지가 되던 곳이다. 장단의 임진강변에 있는 장단석벽(長湍石壁)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예로부터 시인묵객이 많이 찾던 곳이다.
하류 쪽에는 동파적벽(東坡赤壁)이 있으며 화장사 · 심복사 · 경순왕릉 등의 유적이 있다. 강의 중상류 지역은 6·25의 격전지로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으나, 보개산 · 문인폭(文人瀑) · 연취암(蓮醉巖) · 용추(龍楸) · 문인석(文人石) 등의 명승고적이 도처에 많이 남아 있다. 또한, 강의 곳곳에는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고 판문점과 임진각은 남북 분단의 상징적인 곳이 되었다.
북한은 2009년 9월 6일 사전 예고 없이 임진강 상류의 황강댐에서 물을 방류했다. 당시 무인자동경보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아서, 임진강에서 야영하거나 낚시하던 6명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임진강 하류의 파주시에는 LCD 일반산업단지와 같은 중요한 산업 시설과 대규모 신도시 등이 위치하고 있어 남북관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며, 임진강 상류 황강댐에 대한 유량 변화, 방류량 등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를 통한 대책 마련도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