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덕장(德章), 호는 죽실거사(竹室居士). 임기(任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희지(任羲之)이고, 아버지는 증좌참찬 임환(任喚)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감역 신방헌(申邦憲)의 딸이다.
1657년(효종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소속되었다가 도원찰방(桃源察訪)·가례도감 감조관(嘉禮都監監造官)·전적을 거쳐 현종이 죽자 산릉도감낭청(山陵都監郎廳)이 되었다.
숙종 때 정언으로 송시열(宋時烈)의 예론사건에 대하여 적극 옹호하다가 경성판관에 좌천되었고, 다시 울산부사가 되어 송시열의 적소(謫所: 長鬐)를 자주 내왕하였다. 뒤에 병조참지·승지·예조참의·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진위사(陳慰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승지가 되었으나 정치가 날로 어지러워짐을 보고 벼슬에서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1689년(숙종 15) 다시 경주부윤이 되어 부임하던 중에 이이(李珥)·성혼(成渾)이 문묘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사표를 냈으나 허락되지 않았으며, 민비(閔妃)가 폐위되자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후에 형조참의·도승지를 거쳐 지중추부사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여 이름이 높았으며, 성품이 강직하여 불의에 굴하는 일이 없었다. 저서로는 『죽실집』 2책이 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