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자시(子時). 호는 재간(在澗)·간옹(澗翁). 아버지는 응교 임광(任珖)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부호군 홍인(洪隣)의 딸이다.
1741년(영조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효릉참봉(孝陵參奉)을 거쳐 직장에 이르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학문에 있어서는 문사(文詞)보다는 실천에 힘썼다.
잠언(箴言)과 지일십계(至日十誡) 등을 지어 수신의 지표로 삼는 한편 자손 교육의 지침으로 삼았고, 경전을 연구하여 의심나는 곳에 주해를 하고, 성리학은 이이(李珥)의 설을 지지하였다. 편저로는 『경서차록(經書箚錄)』·『국조상신열전(國朝相臣列傳)』과 『재간집(在澗集)』 3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