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촌』은 1921년 장미촌사에서 간행한 근대문학 최초의 시 전문지이다. 『장미촌』의 주간은 황석우이며, 편집 실무는 박영희가 맡았다. 동인은 황석우, 박종화, 박영희, 변영로, 오상순, 노자영, 박인덕, 이홍, 이훈, 정태신, 신태악이다. 『장미촌』 창간호는 전체 24면의 소책자로, 변영로의 권두사 「장미촌」과 동인들이 쓴 창작시 13편, 번역시 1편을 수록하였다. 『장미촌』은 문예사조적 관점에서 『폐허』에서 『백조』로 이어지는 낭만주의 시문학의 과도기적 존재로 평가되며, 최근 연구에서 아나키즘 사상과 연관성이 규명되었다.
『장미촌』의 창간 동인은 황석우, 박종화, 박영희, 변영로, 오상순, 노자영, 박인덕, 이홍, 이훈, 정태신, 신태악이다. 『장미촌』의 창간 및 동인 형성에 대해서는 문단 중심의 설명과 문단 외부의 사회운동권을 포함하는 설명이 있다. 박종화는 자신과 박영희, 노자영, 변영로, 오상순 등이 몇 차례 회합과 토론을 거쳐 1921년 5월 24일 한국 최초의 시 전문지 『장미촌』을 창간했다고 기록하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장미촌』은 1921년 1월에 폐간된 『폐허』 동인의 오상순, 황석우, 변영로와 1922년 1월에 창간하게 될 『백조』 동인의 박종화, 박영희, 노자영이 만든 과도기적인 성격의 잡지이다. 또 다른 설명은 『장미촌』 동인이 문단 내에 한정되지 않고 문필 활동을 하는 사회운동가들까지 포함하는 점에 주목한다. 즉, 박종화, 박영희, 노자영 등의 문단 계열과 황석우, 정태신, 오상순 등 주1 계열이 『장미촌』 동인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장미촌』 주간은 황석우이며, 실제로 편집은 박영희가 담당하였다. 『장미촌』의 판권에서는 편집인은 황석우, 발행인은 변영서(邊永瑞), 발행소는 장미촌사, 인쇄소와 발매소는 한성도서주식회사라고 밝혀 놓았다. 발행인을 미국인 주2로 기재한 것은 일제시대 출판법의 검열과 삭제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장미촌』은 4.6판으로 구성된 전체 24면의 소책자이다. 『장미촌』 창간호의 표지는 ‘장미촌 창간호 자유시의 선구’라는 문구를 넣고, 「선언」을 실어 『장미촌』을 창간하는 목적과 지향을 밝히고 있다. 「선언」에서 “우리는 이곳을 개척하여 우리의 영(靈)의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얻을 촌(村), 장미의 훈향 높은 신과 인간과의 경하(慶賀)로운 화혼(花婚)의 향연이 열리는 촌(村)을 세우려 한다”라고 하여, ‘장미촌’을 문학예술이 도달하는 영원성의 시공간이자 신과 인간의 조화로운 이상향으로 선언하였다.
『장미촌』 창간호의 수록 작품은 권두사 「장미촌」(변영로)과 창작시 13편, 번역시 1편이다. 창작시는 「장미촌의 향연」 · 「장미촌의 제1일의 여명」(황석우),「최후의 고향」(정태신), 「생과 사」 · 「초첨(超瞻)」(신태악), 「피어오는 장미」 · 「밤하늘」(노자영), 「적(笛)의 비곡(悲曲)」 · 「과거의 왕국」(박영희), 「우유(牛乳)빗 거리」 · 「오뇌의 청춘」(박종화), 「신월(新月)의 야곡(夜曲)」(이홍), 「춘(春)」(이훈)이며, 번역시는 「콜넘버스」(박인덕 역)이다. 22면의 「동인의 말」에서 동인 11명의 근황을 알리고 있다.
『장미촌』의 수록 시들은 유미주의적이며 관념적인 사유, 고독과 죽음 예찬, 생명과 자연, 팽창된 자아와 개성 등을 격정적인 언어와 리듬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낭만주의 시 문학의 특징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며,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생의 충실과 확장을 실현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장미촌』은 창간호만 발행되었다. 문인들의 회고에서 『장미촌』 2호와 3호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현재까지 확인되는 것은 『장미촌』 창간호뿐이다.
『장미촌』은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최초의 시 전문지로 평가된다. 문예사조 중심의 관점에서 『장미촌』은 낭만주의 문학의 자장 안에서 『백조』로 연결되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갖는다. 한편, 『장미촌』에서 비전문 문인들의 동인 구성에 주목하는 연구들은 아나키즘의 사상사적 맥락에서 『장미촌』의 의의를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