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구례 출신. 무당[巫人]으로 19세가 되어서야 학문을 하기로 결심하고, 동네 사당에 입학하고자 하였으나 신분이 천하다고 거절당하였다. 그러나 전우(田愚)를 찾아가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한 뒤에도 학문에만 힘쓰고 부인에게도 무당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동네에 싸우는 가정이 있으면 찾아가 화목을 호소하였다. 1910년 국권상실 이후 호적에 입적을 거부하고 납세도 거절하며 일제에 항거하였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온갖 고초를 겪은 뒤 석방되었으며, 그뒤 길거리를 다닐 때에는 늘 눈을 감고 장님처럼 행세하였는데 누가 물으면 왜적이 보기 싫어서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또 머리를 삭발하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며 무언의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경찰에 의하여 치안유지라는 명목으로 멀리 외딴섬에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