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비각은 임진왜란 때 장성 남문(현재 북일면 오산리)에서 의병(義兵)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의사(義士)들의 충의정신(忠義精神)을 기리기 위하여 1802년(순조 2)에 호남의 유림(儒林)들이 건립한 것이다.
비문은 판서(判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가 지었으며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높이 168cm, 폭 63cm 크기의 규모로 되어 있다. 오산 남문창의(南門倡義)는 1592년 7월 20일에 김경수(金景壽) · 기효간(奇孝諫) · 윤진(尹軫) 등이 격문(檄文)을 각 고을에 보내어 의병을 모아 11월에는 초단(草壇)을 설치, 김경수(金景壽)를 맹주(盟主)로 추대하고 김제민(金齊閔)을 의병장으로 삼았다.
그 후 의병군은 북으로 진군하여 직산(稷山) · 진성(振城) · 용인(龍仁) 등지에서 왜적을 격파하고 많은 왜병을 사살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이 비에 새겨진 77선열(先烈) 가운데는 승려가 9명, 노복(奴僕) 1명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