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빛의 스펙트럼 현상에 의해 구별되어 인지되는 광학적 물리현상이다. 서양에서는 색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빛의 또는 물감의 삼원색을 추출한다. 이를 바탕으로 열 가지 색상환을 만들고, 수많은 색의 상호 관계를 엮어 낸다. 동양에서는 색의 의미나 상징성, 그리고 인간에게 주는 인상을 중요시한다. 임금의 복식이나 색동저고리의 색을 사용할 때 대자연과 음양의 원리를 고려했다. 동양에서 색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우주의 모든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윤리와 철학이 결합된 상징적 존재이다.
서양에서 발달한 색채학에서는 색을 사람의 시각 체험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보면서 ① 색상(태양 광선의 스펙트럼에 의한 적 · 주 · 황 · 녹 · 청 · 남(藍) · 자(紫) 등과 구별되는 색합(色合), ② 명도 또는 광도, ③ 채도 또는 순도 등을 분석한다.
모든 색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빛의 삼원색, 또는 물감의 삼원색을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열 가지 색상환(色相環)을 만들고, 이를 확대해 나가면서 수많은 색의 상호 관계를 엮어 낸다.
이러한 결과는 사물을 과학적 · 분석적으로 관찰하는 서양의 합리주의적 정신에 기인한다. 그러나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의 전통적인 색에 대한 관념은 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자(漢字)의 ‘색(色)’이라는 글자는 당초에 ‘인(人)’과 ‘절(節)’을 합한 글자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은 부절(符節 : 부신(符信)이라고도 하는데, 나무 또는 대나무 조각에 글을 쓰고 도장을 찍은 후 두 쪽으로 쪼개 한 조각은 상대에게 주고 다른 한 쪽은 자기가 보관했다가 후일 서로 맞추어 증거로 삼는 것)과 같이 속일 수 없다는 데서 연유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의 단주(段注)에 의하면 “마음은 기(氣)에 달하고 기는 미간(眉間)에 나타나는데, 이것을 일러 ‘色’이라 한다(心達於氣 氣達於眉間 是之謂色).”고 하였다. ‘色’이란 곧 마음의 상태가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 것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 : 교묘한 말과 드러내는 안색)’(論語 學而), 또는 ‘찰언이관색(察言而觀色 :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헤아림)’(論語 顔淵)에서의 ‘색’도 모두 사람의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과 관련되어 있다.
“화기(和氣)가 있는 자는 반드시 부드러운 빛이 있고, 부드러운 빛이 있는 자는 온순한 용모를 가진다(有和氣者 必有愉色 有愉色者 必有婉容).”(禮記 祭義)라는 말에서 ‘색(色)’은 ‘기색(氣色)’ 즉,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얼굴빛을 말한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당초에 ‘색'은 마음의 작용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색’의 쓰임은 고전에서뿐만 아니라 요즘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얼굴이 빨갛다.”라고 할 때 그것은 부끄럼 타는 것을 뜻하는 말이고, “안색이 파랗다.”라는 말은 겁에 질린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얼굴의 색깔이 실제로 물감의 색처럼 빨갛거나 파랗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색을 빌어 표현했을 뿐인 것이다.
이상의 몇 가지 예를 통해 볼 때 동양에서의 ‘색’은 광학적 입장에서 보는 서양과는 달리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 상태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색’은 인간이나 물체의 꼴이나 태, 경치나 경관, 갈래나 종류, 징조나 기미를 표현할 때 쓰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중국과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한자문화권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행색(行色)이 초라하다.”고 하거나 “미색(美色)을 갖추었다.”고 할 때 ‘색’은 꼴이나 태를 나타내는 것이고, “춘색(春色)이 완연하다.”, “경색(景色)이 훌륭하다.”고 할 때의 ‘색’은 경치나 경관을 나타내는 뜻으로 쓰인 예이다.
‘각양각색(各樣各色)’이나 ‘형형색색(形形色色)’이라고 할 때의 ‘색’은 갈래나 종류를 말하는 것이고, “패색(敗色)이 짙다.”라고 할 때는 징조나 기미를 나타내는 말이 된다. 그리고, ‘호색(好色)’, ‘색정(色情)’이라고 할 때의 색은 정욕(情慾)을 뜻하는 말이다.
특수한 용례에 속하지만 불교의 경전에 나오는 “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색’은 공(空)에 반대되는 것, 다시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현상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색’과 유사한 말로 ‘채(彩)’라는 말이 있다. ‘채’는 색깔 또는 빛의 종류를 말하되 아름답다거나 곱다는 의미를 포함하여 하는 말이다. 그래서 채운(彩雲)이라 하면 단순히 ‘색깔을 가진 구름’이 아니라 ‘곱고 상서롭고 환상적인 구름’이라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말이 된다.
마찬가지로 채홍(彩虹)이라고 하면 색깔 있는 무지개라는 의미를 넘어 곱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무지개를 일컫는 말이다. 이처럼 ‘채’는 인상(印象)에서 느껴지는 빛깔이라 할 수 있다.
색에 대해 동양 사람들은 색상 · 명도 · 채도 등을 따지기보다 어떤 색이 지니고 있는 의미나 상징성,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주는 인상을 중요시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동양 특유의 자연주의 사상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동양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음양오행 사상이 그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음양오행 사상이란 우주나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을 음과 양, 두 원리의 소장(消長)으로 설명하는 음양설과, 이를 바탕으로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목 · 화 · 토 · 금 · 수의 변전(變轉)으로 설명하는 사상이다.
오행상생이란 오행이 순환해서 서로 생(生)하여 주는 이치로 금생수(金生水) · 수생목(水生木) · 목생화(木生火) · 화생토(火生土) · 토생금(土生金)을 말하며, 오행상극이란 오행이 서로 이기는 이치로 토극수(土剋水) · 수극화(水剋火) · 화극금(火剋金) · 금극목(金剋木) · 목극토(木剋土)를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동양 사람들은 색을 배색할 때 시각적인 아름다움보다 오방색 상호간의 관련 또는 상극 · 상생을 따져 색의 상징적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이와 관련된 사례를 과거 우리의 어린이들이 주로 입었던 색동저고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색동은 때에 따라 한두 가지 색을 가감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청 · 적 · 황 · 백 · 흑의 오행색을 중심으로 배열한다. 그 배색은 상생(相生)을 택하고 상극(相剋)은 가급적 피하고 있다.
이러한 원리로 색동의 색채 배합이 이루어진 옷이 오방장두루마기이며, 패물에 있어서는 오방랑(五方囊) 등이다. 한편 처용무에서도 청 · 홍 · 백 · 흑 · 홍을 기초로 한 오색이 나타나는데, 이 경우도 색동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양에서는 고래로 오색을 상서로움의 극치로 여겨왔다. 오색(五色)은 그 상서로운 기운으로 말미암아 잡귀가 근접하지 못한다고 믿은 것이다. 예컨대 오색운(五色雲)이라고 함은 곧 선녀가 노니는 상서로운 곳을 상징하는 것이며, 오채(五彩)라 하면 환상적인 색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된다. 오색에 대한 이런 관념이 집의 단청에도 적용되고 있다.
오행을 색으로 나타내면 목(木)은 청(靑), 화(火)는 적(赤), 토(土)는 황(黃), 금(金)은 백(白), 수(水)는 흑(黑)이 되고, 방향으로 나타내면 동(東)은 청, 서(西)는 백, 남(南)은 적, 북(北)은 흑, 중앙(中央)은 황이 된다. 과거 조선시대의 군대 깃발을 보면 이 원리를 철저하게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굿패들이 지역의 수호신을 모시고 굿을 할 때 긴 장대 끝에 오색 무명베를 감고 깃봉 밑에 오색 헝겊 여러 개를 단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오방색이 지니는 벽사와 상서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고려로부터 조선에 이르는 동안 왕비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혼례복으로 착용해 온 ‘ 활옷’의 색은 우주간에 운행하는 원기소로 만물의 주성분이 된다는 5원소를 ‘오행’이라 하고 금 · 목 · 수 · 화 · 토를 각각 백 · 청 · 흑 · 적 · 황이라 하여 색에 뜻을 두었으며, 남녀를 남색, 홍색으로 하여 혼례식에서는 청실 · 홍실이 혼인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화되었다.
활옷은 다홍색 단에 연꽃, 모란, 십장생 등을 수놓아 남색으로 안을 받쳐 만들었으니, 이는 이성지합(二性之合) 백복지원(百福之源)의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다홍색 치마에 자주색 삼회장저고리로 모든 것이 흙에서 성장된다는 원리를 생과 성에 바탕을 두어 예를 치렀다.
전통 시대에 있어서 색은 또한 권위나 권력과 관련된 사상적 ·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시대적 윤리관과 생활 철학 등 인간의 의지와도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임금의 복색을 오방의 중앙을 상징하는 황색으로 한 것이나, 백관들의 경우 신분과 계급의 차이에 따라 복색을 달리 한 것, 그리고 왕비와 궁녀의 신분을 옷의 색깔로 구별했던 것 등은 모두 왕권의 유지와 군신 간의 위계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철저하게 관리되고 유지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이 옷의 색으로 당시의 계급과 지체의 높고 낮음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 이 모든 사례에서 색은 옷을 입는 사람의 기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며, 오직 음양과 오행의 질서나 시대적 윤리관에 따라 적용되었을 뿐이다.
동양의 옛 사람들은 색을 시각을 자극하는 광학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색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대자연과 음양의 원리를 고려하여 색을 취하고 활용하면서 그 색의 의미와 상징성을 되새겼다.
말하자면 동양의 색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우주 안의 가능한 모든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윤리와 철학이 결합되어 있는 상징적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