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주도 ()

교통
제도
고려시대 22개 역도(驛道) 중의 하나.
정의
고려시대 22개 역도(驛道) 중의 하나.
개설

고려시대 계수관(界首官)인 전주목(全州牧) 관내의 16개 역과 청주목(淸州牧)의 주군(主郡)인 공주(公州) 관내의 5개 역을 관할하는 역로망이다.

내용

『고려사』 권82 병지2 참역(站驛)에, “전공주도(全公州道)는 21개의 역을 관할하는데, 삼례(參禮)[전주(全州, 전라북도 완주군)], 양재(良材)[여양(厲陽, 전라북도 익산시)], 앵곡(鶯谷)[이성(伊城, 전라북도 완주군)], 옥포(玉庖)[운제(雲梯, 전라북도 완주군)], 재곡(材谷)·채평(彩平)[금마(金馬, 전라북도 익산시)], 진림(榛林)·내재(內材)[김제(金堤, 전라북도 김제시), 고원(苽原)[고부(古阜, 전라북도 정읍시)], 신보(新保)·거산(居山)[태산(泰山, 전라북도 정읍시)], 천원(川原)[정읍(井邑, 전라북도 정읍시)], 소안(蘇安)[임피(臨坡, 전라북도 군산시)], 진현(進賢)[진례(進禮, 충청남도 금산군)], 진화(珍化)[진동(珍同,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濟元)[진례], 경천(敬天)[공주], 평천(平川)[연산(連山, 충청남도 논산시)], 득연(得延)·이도(利道)[공주], 정민(貞民)[회덕(懷德, 대전광역시)]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전공주도는 승라주도(昇羅州道)·충청주도(忠淸州道)와 마찬가지로 고을 명칭인 전주와 공주를 본떠 만든 역도 명칭이다. 전주목은 나주(羅州)와 함께 전라도의 계수관 고을인 반면, 공주는 청주목의 여러 주군 중 한 고을이었다.

전주 관내에 분포한 16개의 역은 전주를 중심으로 남북쪽과 서쪽 방면에 분포한다. 남쪽은 정읍시에 위치한 천원역을 경유하여 전라남도 장성과의 경계인 노령(蘆嶺=갈재)을 넘어 승라주도의 단암역(丹嚴驛, 장성군)으로 연결되었고, 서쪽으로는 오늘날의 익산·군산·김제시 방면으로 역로망이 편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북쪽은 삼례역-양재역-평천역-경천역을 경유하여 북상한 다음, 공주의 웅진도(熊津渡)에서 금강(錦江)을 건너 일신역(日新驛,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충청주도의 역로망에 접속하여 충청·경기지역으로 나아갔다. 이처럼 전주 북쪽 방면의 5개 역이 공주 관내에 속하였다. 이에 반해 전주목의 동남쪽 방면에는 전공주도가 아니라 남원도(南原道)의 역로를 통해 내륙지역으로 연결되었다.

전주목 관내 지역은 금강을 비롯하여 만경강·동진강 등의 크고 작은 물줄기가 서해로 흘러나가 수운교통(해운 포함)이 편리하였기 때문에 육상교통로가 조운활동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전라북도 내륙지역인 남원부(南原府) 관내 지역에서는 세곡(稅穀)을 비롯한 물화(物貨)를 서해안의 해운 거점인 조창(漕倉)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남원도의 역로뿐만 아니라 전공주도의 동-서 방향 역로망을 적극 활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고려시대 전공주도는 전주 중심의 교통망에 남쪽과 북쪽의 주요 고을을 향하는 분포 양상을 보인다. 즉 역도의 주요 진출 방향은 남쪽의 노령을 향하는 경로와 북쪽의 공주로 향하는 경로이다. 물론 남북의 주요 진출 경로와 함께 동서간의 역로망은 전라북도 동부의 산간 내륙지역과 서부의 해안지역을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고려시대 교통운수사 연구』(한정훈, 혜안, 2013)
『『고려사』 병지 역주』(이기백·김용선, 일조각, 2011)
『국역 고려사』18(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경인문화사, 2011)
「고려시대 안흥창과 부안 청자의 운송방식」(한정훈, 『도서문화』48, 2016)
「전북지역 백제와 가야의 교통로 연구」(곽장근, 『한국고대사연구』63, 2011)
「고려·조선초의 역로망과 역제 연구」(정요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집필자
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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