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기적비(紀蹟碑)라 할 수 있는데, 전쟁에서의 무공을 기리거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된 기공비(紀功碑)·전승비(戰勝碑)·승전기적비(勝戰紀蹟碑)·대첩비(大捷碑) 등을 말한다.
또한, 싸움에서 희생된 자들의 넋을 위로하거나 후세에 경계하는 뜻에서 옛싸움터 등에 세운 전몰위령비(戰歿慰靈碑)·전망비(戰亡碑)·전장기적비(戰場紀蹟碑) 등도 이에 속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고구려·백제·신라 삼국간의 세력다툼이나 삼국통일기의 내외간의 전쟁, 고려시대의 여진·거란·몽고의 침입 등 적지 않은 전쟁이 있었으나 현재 고려시대까지의 전적비는 전래하는 예가 드물다.
단지, 우리 역사와 관련되는 예로 「당유인원기공비(唐劉仁願紀功碑)」·「당소정방평백제명(唐蘇定方平百濟銘)」이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개국초기부터 왜구의 침입이 적지 않았고 왜(倭)·호(胡)와 큰 전쟁을 치렀다. 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군인은 물론 일반인이나 승려까지 흔연히 전장에 나섰으므로 많은 전적(戰蹟)과 희생이 따랐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적지 않은 전적비가 세워졌는데, 대표적인 예로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행주전승비(幸州戰勝碑)」·「연성대첩비(延城大捷碑)」·「김시민전성각적비(金時敏全城卻敵碑)」·「이순신좌수영대첩비(李舜臣左水營大捷碑)」·「이순신명량대첩비(李舜臣鳴梁大捷碑)」·「조헌전장기적비(趙憲戰場紀蹟碑)」·「정발전망비(鄭撥戰亡碑)」 등이 있다.
이밖에도 내란을 평정한 기록으로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평정하고 세운 「안주승전기적비(安州勝戰紀蹟碑)」 등이 있다. 근래에 들어서 한말 일제의 침략에 항거한 의병들의 애국적 행적을 기리거나 6·25동란에 따른 수많은 희생자들의 영령을 추모하고, 처절하였던 당시의 싸움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곳곳에 많은 전적비가 세워지고 있다. 이들 전적비는 우리 선조들의 애국충절을 보여주는 증거물의 하나로서 길이 민족사의 기념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