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서원군파 묘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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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전주이씨 서원군파 묘역 전경
안성 전주이씨 서원군파 묘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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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 보개면과 포천시 소흘읍에 있는 조선시대 전주이씨 서원군파의 묘역.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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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과 포천시 소흘읍에 있는 조선시대 전주이씨 서원군파의 묘역. 시도기념물.
내용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북좌리에 있는 묘역이 1989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후기에 걸친 조성된 묘역이다. 원래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인 1937년 종중의 이기주(李起鑄) 등 7명이 서원군파 묘역 땅을 목하영(木下榮)에게 매각함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함에 따라 1938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으로 이장하였다.

그 후 또 분당지구의 신도시 개발로 인하여 1992년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북좌리 및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로 나뉘어 2차 이장되었다.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에는 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았으나 서원군(瑞原君)과 그의 정부인 무덤 및 그 후손들의 묘역이 있으며 효안제(서원군의 제실)도 그곳에 모셔져 있다. 2차에 걸친 이장으로, 특히 1차 이장 때에 묘역이 심하게 변모하였다.

이 중에서 효령대군(孝寧大君)의 6대손인 이신성(李愼誠)과 그의 아들인 이목(李楘), 그의 손자인 이지항(李之恒)의 묘와 신도비(神道碑: 죽은 사람의 행적을 적어 무덤 앞에 세운 비) 등이 1989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신성은 1597년(선조 12)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뒤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扈從: 모시고 따라감.)하였고,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냈으며 죽은 후에 이조판서에 증직(贈職: 죽은 후에 벼슬과 품계를 높여 주는 일)된 인물이다.

그의 묘역은 묘표(墓表) · 판석(板石) · 향로석 각 1기와 문인석(文人石: 능 앞에 세운 文官형상의 돌) 2기 그리고 신도비(神道碑) 1기가 있다. 봉분은 부인과 쌍분으로 높이 120㎝에 직경 140㎝이며, 상석(床石)과 향로석은 160×95×25㎝와 32×26㎝의 규모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묘표는 귀부(龜趺: 거북 모양 비석의 받침돌)가 비치고 있으며, 이수(螭首: 비석의 머리)는 용이 여의주를 움켜쥔 형상이다. 규모는 비신이 109×57×19㎝, 귀부가 180×128×57㎝, 이수는 68×28×50㎝이다.

묘액(猫額)에 증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행봉직랑사옹원봉사 이공신성지묘 증정부인 원주변씨 증정부인 광주김씨 부(贈資憲大夫 吏曹判書兼知義禁府使五衛都摠府都摠管行奉直郞司甕院奉事李公愼誠之墓贈貞夫人原州邊氏贈貞夫人廣州金氏祔)이라 기록하였다.

망주석(무덤 앞에 세운 여덟 모로 깎은 한 쌍의 돌기둥)은 당초문(唐草紋)과 운문(雲紋)이 새겨져 있고, 문인석은 173×59㎝의 규모이다. 신도비는 200×87×43㎝로 가첨석(加檐石)은 160×50×54㎝에 받침돌은 168×132×64㎝로, 비문은 남구만(南九萬)이 짓고 윤덕준(尹德駿)이 전액(篆額:비석의 상부에 전서체로 글을 씀.)하였다.

이무는 선조∼인조대의 문신으로 자는 문백(文伯), 호는 송교(松郊)이며 이진성의 아들로 성혼(成渾)과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12년(광해군 4) 식년(式年)문과에 급제한 이래 병조좌랑(兵曹佐郞) 화의에 반대했다. 죽은 후에 좌찬성(左贊成)에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묘역에는 묘갈(작은 돌비석) 1기, 상석 1기, 망주석과 문인석 각 2기, 신도비 1기가 하단에 있다. 봉분의 높이는 90㎝, 직경 380㎝이며, 상석은 154×94×28㎝이다. 묘갈은 비신이 116×56×18㎝이며 이수는 66×27×45㎝이고, 대석은 122×78×11㎝ 크기이다.

비액은 ‘증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겸 영경연 홍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세자사 행가의대부 사헌부 대사헌 겸 동지경연 춘추관 성균관사 세자좌부빈객 이공무지묘 증 정경부인 장수황씨 부좌(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行嘉義大夫司憲府大司憲兼同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世子左副賓客李公武之墓贈貞敬夫人長水黃氏祔左)’의 명문(銘文)이 있다.

망주석의 높이 152㎝로 당초문과 운문이 조식(彫飾: 조각하여 장식됨)되고, 문인석은 높이 162㎝, 견폭 44㎝의 규모이다. 신도비는 비신이 212×87×23㎝이며, 귀부는 200×124×54㎝의 크기이다. 이수는 82×117×37㎝로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인데 조각 수법이 매우 사실적이다.

비문은 김상헌(金尙憲)이 짓고 오준(吳竣)이 쓰고 김광현(金光炫)이 전액하였다. 이지항은 이무의 아들로 부제학(副提學)을 지냈다. 그의 묘역은 약 40평으로 묘표 1기, 상석 1기, 문인석 2기가 있다. 묘액에는 ‘부제학 이지항지묘 배평산신씨 부좌(副提學李之恒之墓配平山申氏祔左)’의 명문이 있으며, 묘표는 92×42×17㎝의 크기이다.

개석(뚜껑돌, 가첨석)은 55×19㎝, 상석은 115×75×21㎝, 문인석은 164×35㎝의 규모이다. 이 묘역은 조선시대 문중묘의 원형을 잘 보존한 형태이다. 묘역에 있는 금석문의 조형미와 형식 등이 16세기 이래의 묘제 변천사와 조각사를 잘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대관』(경기도, 1998)
『경기인물지』(경기도, 1991)
『분당지구문화유적종합학술조사보고서』(한양대학교, 1991)
집필자
오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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