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묘역에는 태안군 이팽수(李彭壽)의 묘와 그의 종손 이경인(李敬仁)의 묘가 있다. 이팽수는 조선 성종의 손자로서 1592년(선조 25) 왕을 호종(扈從:모시고 따라감.)한 공로로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책훈(策勳:공로자를 문서에 기록하는 것)되었다.
봉분은 쌍분으로 부인 안산김씨(安山金氏)가 좌측에 부장(祔葬)되어 있으며 묘표(墓表:무덤 앞에 세워 놓은 푯돌) 1기, 상석(床石: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해 넓적한 돌로 만든 상) 1기, 향로석 1기, 문인석(文人石) 2기가 있다.
묘액(墓額)에 ‘유조선국 증군부인 행현부인 안산김씨지묘 증가덕대부 태안군 행승헌대부 태안군 겸 오위도총부총관 휘팽수지묘(有朝鮮國贈郡夫人行縣夫人安山金氏之墓贈嘉德大夫泰安君行承憲大夫泰安君兼五衛都摠府摠管諱澎壽之墓)’이라는 명문(銘文)이 있고, 후면의 만력 46년 무오(萬歷四十六年戊午)를 통해 묘비가 1618년(광해군 10)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팽수 묘는 높이 140㎝와 직경 600㎝이고, 부인 묘는 높이 135㎝와 직경 580㎝의 규모이다. 상석은 144×83×25㎝이며, 향로석은 높이 43㎝과 폭 28㎝이고, 문인석은 높이 160㎝와 견폭 37㎝의 규모이다.
이경인은 이팽수의 증손으로 이천부사(利川府使)·광주병마진영(廣州兵馬鎭營) 등을 역임하였고, 자는 극보(克甫)이고 호는 정촌(亭村)이다. 그가 이곳 탄천(炭川) 상류에 정자를 짓고 학문에 열중했던 ‘정자터’가 있는데 그의 호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묘역은 약 50평으로 묘갈(墓碣:작은 돌비석) 1기, 상석 1기, 향로석 1기, 망주석(무덤 앞에 세운 여덟 모로 깎은 한 쌍의 돌기둥) 2기, 문인석 2기가 배치되어 있다. 묘갈은 1696년(숙종 22)에 세웠는데, 상단에 연화문과 측면에 안상문(眼象紋)을 조식(彫飾:조각하여 장식함.)하였다.
비문에 그의 선손과 관력(官歷)이 음기되어 있는데, 마모가 심하여 기록한 자와 글을 쓴 자를 알 수 없다. 비신은 128×45×15㎝이고, 받침돌은 79×57×20㎝의 규모이다. 판석은 142×80×30㎝이며, 향로석은 39×29㎝이다.
망주석과 문인석의 높이는 각각 115㎝와 115㎝의 규모이다. 묘표의 명문(銘文)은 ‘통정대부 행이천부사 이공경인지묘 숙부인 남양홍씨 부(通政大夫行利川府使李公京仁之墓淑夫人南陽洪氏祔)’로 되어 있다.
이 묘역은 조선시대 문중묘의 원형을 잘 보존한 형태이다. 묘역에 있는 금석문의 조형미와 형식 등이 16세기 이래의 묘제 변천사와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