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의 원수 가운데에는 계수관(界首官)으로 파견되어 수령을 겸하면서 도순문사의 휘하에서 국방을 담당하는 직책도 있었는데, 이들은 1389년(공양왕 1) 절제사로 개칭된 뒤, 예컨대 ‘광주등처병마절제사(廣州等處兵馬節制使)’와 같이 계속 계수관을 중심으로 국방에 임하였다.
조선 초기에도 2품 이상의 장수로서 지방에 파견되는 경우 일반적으로 절제사라 호칭하였으며, 병마도절제사와 수군도절제사 역시 흔히 절제사로 불렸다.
도절제사가 아닌 경우에는 단절제사(單節制使)로 구분하기도 하였는데, 병마도절제사는 1466년(세조 12) 병마절도사로, 수군도절제사는 1420년(세종 2) 수군도안무처치사(水軍都安撫處置使)로 직함이 바뀌었다가 1466년 수군절도사로 각각 개칭되었다.
2품 수장(守將)으로서 변방에 파견되던 병마절제사는 1455년 전국을 군익도(軍翼道)로 편성한 이후로는 소멸되고 정3품의 거진장(巨鎭將)으로 수령이 겸하는 병마절제사 · 병마수군절제사만이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