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충파 ()

유교
단체
조선 후기 성리학의 한 유파.
정의
조선 후기 성리학의 한 유파.
개설

지연이나 학맥에 의해 뚜렷한 사승 관계를 형성했던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이기론(理氣論)에 있어서 이(理)의 우위를 주장하는 주리파(主理派)와 기(氣)의 작용을 중시하는 주기파(主氣派)의 양 극단에서 벗어나 두 가지 설을 절충하려는 경향의 학자들을 일컫는다.

연원 및 변천

‘절충파’라는 용어는 현상윤(玄相允)의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에서 조선 후기의 성리학을 주리파·주기파·절충파로 분류한 이래, 주리와 주기의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입장에서 성리설을 제시한 학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절충파의 학자들이 모두 주기론과 주리론을 기계적으로 절충한 것은 아니다. 주리론의 입장에서 주기론을 일부 수용하거나, 주기론의 입장에서 주리론을 일부 수용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 분류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

그 발생을 보면, 이황(李滉)과 이이(李珥)가 이기론의 문제에 있어 각기 상이한 학설을 제시한 이래, 영남학파(嶺南學派)는 이황의 학설을 신봉해 주리파로 발전하고, 기호학파(畿湖學派)는 이이의 학설을 옹호해 주기파로 발전함으로써 학파의 분열이 일어났다. 그 사이에서 자파의 입장을 떠나 양자의 견해를 자유로이 수용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면서 독자적으로 자신의 학설을 표방하는 학자들이 나타났으니, 이들이 곧 절충파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절충파의 인물들은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에서 모두 찾아 볼 수 있으며, 특히 기호학파에서 더욱 활발해 뚜렷이 하나의 학맥을 이루는 특징을 보여 준다.

절충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영남학파에 속하는 학자로 장현광(張顯光)·정경세(鄭經世)·정종로(鄭宗魯) 등과, 기호학파에 속하는 학자로 임영(林泳)·조성기(趙聖期)·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이재(李縡)·김원행(金元行)·오희상(吳熙常) 등이 있다. 또, 이이 이전의 인물로 ‘이기일물설(理氣一物說)’을 주장한 이항(李恒)이나 조선 말기의 전우(田愚)를 절충파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 가운데 장현광과 정경세는 ‘이체기용설(理體氣用說)’과 ‘이본기용설(理本氣用說)’을 각각 주장해, 이황 계통의 이 우위설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기의 작용을 강조하는 이이의 학설에 접근하였다. 정경세의 6대손인 정종로도 ‘이선기후(理先氣後)’·‘이약기강(理弱氣强)’을 주장해 주리와 주기를 절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또, 기호학파의 임영과 조성기는 이이의 견해를 계승하면서도 이의 능동성을 인정해 이황의 학설도 포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기호학파 내부의 절충적 입장은 김창협에 이르러 보다 확산된다. 그는 「논퇴율양선생사단칠정변(論退栗兩先生四端七情辨)」에서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의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심성론에 있어서는 주리와 주기를 겸한 것으로 파악하는 이황의 이원적 이해를 가미하였다. 이후 그의 절충적 태도를 계승한 인물이 다수 배출되었다.

김창협의 동생 김창흡도 이기론에 있어서 이이가 ‘기발(氣發)’을 너무 강조해 성, 즉 이의 주재(主宰)를 소홀히 취급하였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의 개념을 본체의 측면인 수설(竪說)과 현상의 측면인 횡설(橫說)로 구분하면서 이의 작용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있어서는 이황의 이원론적 견해에 반대하고 이이의 일원론적 견해에 찬성하는 등 양가의 학설을 절충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김창협의 제자 이재는 주기파의 ‘심즉기(心卽氣)’와 주리파의 ‘심즉리(心卽理)’를 모두 취하지 않고 마음을 이와 기의 결합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기론에서는 이가 기의 주인이 된다는 ‘이위기주론(理爲氣主論)’을 주장해 김창협의 절충적 경향을 계승하였다.

김원행은 김창협의 손자로, 마음이 이와 기 양자의 결합이라는 ‘심겸이기(心兼理氣)’를 주장해 대체로 김창협과 이재의 견해를 따랐으나, 주기파인 한원진(韓元震) 등의 영향으로 약간 주기론에 치우치면서 양자를 절충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오희상은 이는 기의 근본이 되고 기는 이의 재료가 된다는 ‘이위기본, 기위이재(理爲氣本, 氣爲理才)’의 견해와, 움직이는 것은 기이고 주재하는 것은 이라는 ‘기동이재(氣動理宰)’를 주장함으로써, 김창협과 그의 문하를 중심으로 한 절충론을 계승하면서도 주리론으로 약간 치우치는 성격을 나타내었다.

의의와 평가

절충파는 조선 후기의 사상사와 학술사에서 큰 비중을 지니는 학파로서, 조선 성리학이 이황과 이이 이후 주기론과 주리론으로 나누어져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그 양자의 학설을 종합하고 절충하여 새로운 체계를 세웠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유학사(韓國儒學史)』(배종호, 연세대학교출판부, 1974)
『자료한국유학사초고(資料韓國儒學史草稿)』(이병도, 1959)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현상윤, 민중서관, 1949)
집필자
금장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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