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중소(仲素), 호는 제암(制庵). 정경세(鄭經世)의 7세손으로, 정익로(鄭翼魯)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생원 강세진(姜世晉)의 딸이다. 이황(李滉)을 사숙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하여 『대학』·『중용』·『심경(心經)』 등 성리(性理)에 관한 학설을 탐독하였다.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선기옥형(璿璣玉衡) 등 역리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여 그 이치를 터득하였다. 1821년(순조 21) 정경세의 별집(別集)과 연보를 간행하였고, 1835년(헌종 1) 숭도사(崇道祠)를 지어 정경세를 봉안하였다.
이듬해 정종로(鄭宗魯)의 문집인 『입재문집(立齋文集)』을 편집하여 간행하였으며, 송암서원(松巖書院)의 강장(講長)이 되어 『소학』을 강의하였고, 도남서원(道南書院)에서 용학(庸學)과 『심경』을 강의하면서 후진을 가르쳤다. 영남유림을 대표하여 유성룡(柳成龍) 부자를 제향한 병산서원(屛山書院)의 사액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저서로는 『제암집(制庵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