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추경(樞卿). 정자급(丁子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수강(丁壽崗)이고, 아버지는 병조판서 정옥형(丁玉亨)이며, 어머니는 김언신(金彦辛)의 딸이다.
1521년(중종 1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34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선공감직장(繕工監直長)에 제수되었다. 그 뒤 전적을 거쳐 세자시강원설서에 임명되었는데, 이 때 과거급제한지 10개월 만에 참직(參職)에 올랐으니 관작이 너무 외람되다는 사헌부의 공박을 받기도 하였다.
그 해 정자를 거쳐 저작·부수찬·이조좌랑·이조정랑·지평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1543년 교리가 되었다. 그 해 부응교·장령을 거쳐 세자시강원우보덕과 응교를 역임하고, 1545년(인종 1) 예관(禮官)으로 명나라 사신을 영접한 뒤 사간이 되었다.
사간으로서 활발한 언론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546년(명종 1) 예조참의에 이르렀다. 같은 해 문위사(問慰使)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였으며, 그 이듬해 대사간이 되고, 그 뒤 우부승지·좌부승지를 역임하고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으나 사직을 청하였다.
1551년 한성부우윤을 거쳐 1553년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그해 병조참판이 되어 다시 중앙으로 돌아왔다. 1557년 다시 평안감사로 나간 뒤 예조참판·한성부판윤·함경감사를 역임하고, 1561년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 해 판의금부사로 종묘 헌관(獻官)이 되었으며, 그 뒤 좌찬성·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566년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