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성임(聖任), 호는 송창(松滄). 아버지는 정형보(鄭亨輔)이며, 어머니는 광주김씨(廣州金氏)로 김정구(金鼎九)의 딸이다. 큰아버지 정인보(鄭仁輔)에게 입양되었으며, 계덕해(桂德海)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76년(영조 52)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가 되었고, 그 뒤 전적·봉상시첨정·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왕의 구언(求言)이 있을 때마다 군학(君學)과 시무(時務)에 대한 직언극간으로 정조의 두터운 총애와 신임을 받았다. 경사(經史)와 예학에 밝았고,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786년(정조 10) 청암찰방(靑巖察訪)으로 임지를 향하여 가다가 영산강을 건너면서 잘못하여 인신(印信)을 물에 빠뜨렸는데, 며칠 동안 뒤졌으나 찾지 못하다가 강신(江神)에게 고하는 축문을 써서 읽고 난 뒤 인신이 갈고리에 걸려 올라왔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 축문을 한유(韓愈)의 「악어문(鰐魚文)」에 비유하였다. 정조도 일국을 대표할만한 문장이라는 찬사를 내렸다고 한다. 저서로는 『송창집(松滄集)』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