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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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정충사지 전경
정읍 정충사지 전경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송상현 · 무신 신호 · 무신 김준 등의 향사 관련 사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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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송상현 · 무신 신호 · 무신 김준 등의 향사 관련 사찰터.
내용

1985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충사는 임진왜란 때 동래성 전투에서 역전분투하다가 전사한 부사(府使) 송상현(宋象賢),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장공(忠壯公)신호(申浩), 그리고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안주목사(安州牧使)로 있으면서 성을 지키다가 적에게 함락되자 가족과 함께 분사(焚死)한 장무공(壯武公)김준(金浚)을 향사하기 위해 1632년(인조 10) 건립되었다.

그 뒤 1657년(효종 8) 정충(旌忠)이란 사액이 내려졌다. 송상현은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1551년(명종 6) 고부 천곡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덕구(德求)요, 호는 천곡(泉谷)이다. 1576년(선조 9) 문과에 급제하여 군자감정(軍資監正)을 거쳐 1591년(선조 24) 동래부사에 부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부산을 함락시킨 왜적들이 동래성을 공격해오자 끝까지 항전하다가 순절하였다. 좌찬성(左贊成)에 증직되고, 충렬(忠烈)의 시호가 내렸다.

신호는 본관이 평산(平山)이며, 1539년(중종 34) 고부군 원당리(현 북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1567년(명종 22) 무과에 급제하여 조산포만호와 도총부도사를 거쳐 낙안군수로 부임,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의 좌부장으로 옥포싸움에서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 교룡산성의 별장이 되어 1597년(선조 30) 8월 16일 남원성전투에서 역전하다가 병사 이복남(李福男)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 형조판서에 증직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김준은 본관이 언양(彦陽)이며, 1582년(선조 15) 고부군 금정리(현 소성면 정문리)에서 출생하였다. 1605년 무과에 급제하여 교동현감을 지냈으며, 인조반정 후에 죽산부사 · 훈련원정를 거쳐 1625년(인조 3) 안주목사로 부임하였다.

1627년 청나라 군이 압록강을 건너 안주성을 공격해올 때, 병사 남이흥(南以興) 등과 함께 끝까지 항전하다가 이기지 못하자 스스로 화약에 불을 당겨 분사하였다. 우찬성에 증직되고, 장무(壯武)의 시호가 내려졌다.

서현사는 1868년(고종5)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7년 복설되었고, 1964년 이곳의 유림들에 의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충사의 주요 건물로는 외삼문(外三門) · 강당(講堂) · 내삼문(內三門) · 사당(祠堂)이 있으며, 사당 우측 마당에는 1872년에 세운 정충사유허비가 비각 안에 위치하고 있다.

참고문헌

『전북문화재대관(全北文化財大觀)』
『정읍지방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井邑地方文化財地表調査報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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