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년(광해군 9) 고경명의 아들 고용후(高用厚)가 편집·간행하였다. 『제봉집』은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국역 제봉전서』라는 제목으로, 본집·속집·유집 외에 유서석록·정기록·제하휘록·제봉연보·포충사지 등을 모두 합해 상·중·하 3책으로 출판되었다.
본집 5권 5책, 속집 1권 1책, 유집(遺集) 1권 1책, 합 7권 6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본집은 모두 시문집으로 이항복(李恒福)과 유근(柳根)의 서문, 명나라 예부주객(禮部主客) 장응회(莊應會)의 서문이 있고, 제봉문인록(霽峯門人錄)이라 하여 문인들의 이름과 그에 관한 간단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문인들 가운데에는 문과에 급제한 사람,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사람, 정문이 내려진 사람, 국란 때 의병을 일으킨 사람,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 등 여러 사람이 있다. 본집 5권에는 고시·율시·절구·부·명·지·설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속집은 문집을 편찬할 때 누락되었던 시문 40여 수를 유근이 뽑아 편찬한 것이고, 유집은 아들 고용후가 또 빠져 있던 시문을 찾아내어 편찬한 것이다. 유집에는 시·부·잡저·표전(表箋)·교서(敎書)·격문 및 고용후의 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자연을 보고 느낀 바를 읊은 것도 있고, 고독한 밤이나 흥에 겨웠을 때 마음에 있는 회포를 읊은 시, 다른 시의 운(韻)을 따라 지은 시 등으로 다양하다.
『제봉집』 외에도 고경명의 유문으로는 「유서석록(遊瑞石錄)」이 있는데, 이것은 서석산(瑞石山: 무등산의 옛 이름)에 놀러갔다 돌아와서 적은 기행문이다. 명나라 예부상서 서광계(徐光啓)는 이 글을 읽고 발문을 지어 평하기를 “매우 훌륭한 문장으로 문채가 빛난다.”고 한 바 있다. 그밖에도 고경명에 관계되는 기록으로는 『정기록(正氣錄)』·『제하휘록(霽下彙錄)』·『제봉연보(霽峯年譜)』·『포충사지(褒忠祠誌)』 등이 있다.
『정기록』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고경명과 맏아들 고종후(高從厚), 둘째 아들 고인후(高因厚) 등 세 부자의 충효 정신과 절의 정신 및 그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정기록’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문천상(文天祥)의 「정기가(正氣歌)」에 비유해 이 책의 서문을 쓴 윤근수(尹根壽)가 지은 것이다. 수록된 내용은 임진왜란 때 고경명이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각 지방 및 각계의 인사들에게 보낸 격서(檄書) 및 서한, 죽은 뒤 왕 또는 왕세자로부터 영전에 보내진 제문과 발문 등으로 되어 있다.
『제하휘록』은 고경명의 7대손 고시민(高時民)이 편찬한 것으로, 고경명·고종후·고인후·고순후(高循厚)·고용후 등에 관계되는 여러 사실과 문적 등을 뽑아 편집하고, 여기에 서·발·제문·만사·행장·유사·묘갈 등을 보태어 이룬 것이다. 말하자면 고경명을 중심으로 한 고씨 일문의 문집이라 하겠다. 『제봉연보』도 고시민이 편찬한 것으로, 1839년(헌종 5) 3월에 완성해 같은 해 11월에 처음 간행되었고, 그 뒤 몇 차례 중간되었다.
『포충사지』에는 포충사가 세워진 경위와 창건 목적 및 세운 사람들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그 뒤 포충사에 관한 모든 문헌과 운영 사항이 기록되어 있으며, 역대 원장과 재임(齋任) 등의 명단, 여러 부속 건물에 대한 건립 경위와 기문(記文)·상량문·봉안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59년에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