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백남(尹白南)을 위원장으로 하고, 안석영(安夕影)·이시우(李時雨)·박기채(朴基采)·방한준(方漢駿)·황운조(黃雲祚)·양세웅(梁世雄)·유장산(柳長山)·김성춘(金聖春)·최칠복(崔七福)·고해진(高海振)·김흥만(金興萬)·이병일(李炳逸)·김학성(金學成) 등이 모여서 조직하였는데, 주한미군정청 보도부에서는 뉴스영화의 제작을 이 본부에 의뢰하였다.
이렇게 해서 광복 후 최초의 영화활동이 시작되었으며, 이 무렵에 나온 「해방뉴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영화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수시로 촬영반을 전국 각지에 파견하여 뉴스영화를 촬영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주한미육군 제502부대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더불어 ‘국립영화제작소’가 그 기능을 인수받게 되었다. 조선영화건설본부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영화인협회’의 자리와 그 기재들을 이양받고 발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