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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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후기, 각종 부세나 환곡을 납부하지 못하였거나 납부 대상자가 사망 · 도망하여 징수할 곳이 사라진 경우 그 친족에게 대신 징수하는 방식.
제도/법령·제도
시행 시기
조선 후기
시행처
지방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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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족징(族徵)은 조선 후기에 각종 부세나 환곡을 납부하지 못하였거나 납부 대상자가 사망 · 도망하여 징수할 곳이 사라진 경우 그 친족에게 대신 징수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전결이나 신역(身役), 환곡 등을 미납하였을 때에 친족에게 대신 징수하던 불법적인 관행을 말한다. 이러한 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지방 관청에서는 재정적인 문제를 이유로 자의적으로 시행하였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 각종 부세나 환곡을 납부하지 못하였거나 납부 대상자가 사망 · 도망하여 징수할 곳이 사라진 경우 그 친족에게 대신 징수하는 방식.
내용

일반적으로 전결이나 신역(身役), 환곡 등을 미납하였을 때에 친족에게 대신 징수하던 관행을 말한다. 이러한 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지방 관청에서는 재정적인 문제를 이유로 자의적으로 시행하였다.

포괄적으로 보면 족징은 모든 징수 행위에서 이루어졌지만, 주로 신역이나 환곡에서 두드러졌다. 신역은 도망간 지 10년이 지나면 다른 사람으로 채우는 것이 법규였지만, 일족(一族)이 있으면 그들에게 스스로 대신할 사람을 구하여 채우도록 하는 예외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미납된 신역을 책임져야만 하였다. 그런데 가까운 일족에서도 감당하지 못하면 다른 친척으로까지 징수 대상이 계속 확대되어 종래에는 광범위한 족징으로 이르게 되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환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7세기 후반부터 환곡은 지방 재정을 구성하는 주요 재원으로 자리 잡아갔다. 공식적인 수입원인 대동 저치미나 양역(良役)자가 줄어들고, 비공식적으로 재정에 보태던 은결(隱結)도 다수가 색출되는 상황에서 환곡은 지방 관청에서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원이었다. 다만, 환곡의 자의적 운영은 국법에서 강하게 금지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미상환분이 발생하였을 때 다른 부세보다 더 철저하게 징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환곡 수급자를 통한 상환이 어려울 때는 족징 · 인징과 같이 불법적인 방식을 동원하였던 것이다. 족징은 당면한 재정 문제 해결에는 일부 도움이 되었지만, 장기적으로 향촌 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동성(同姓) 마을이 많았던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 한번 시작된 족징은 또 다른 족징으로 이어져 마을 공동체 전체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부당한 징수 방식에 농민들의 불만은 쌓여 갔고, 이는 19세기 중반 민란이 발생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석담일기(石潭日記)』
『약천집(藥泉集)』

논문

임성수, 「임술민란기 추금 강위의 현실인식과 삼정개혁론」(『조선시대사학보』 79, 조선시대사학회, 2016)
김경란, 「임술민란 전후 전라도의 군정운영과 식리문제」(『한국사학보』 49, 고려사학회, 2012)
송양섭, 「임술민란기 부세문제 인식과 삼정개혁의 방향」(『한국사학보』 49, 고려사학회, 2012)
집필자
임성수(평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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