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병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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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경상좌도 울산에 있었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주둔 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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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경상좌도 울산에 있었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주둔 병영.
내용

1407년(태종 7)의 행정구획시 경상도의 낙동강을 경계로 하여 낙동(洛東)과 낙서(洛西)로 나뉘었는데, 이를 각각 좌도와 우도로 삼았다.

이에 따라 1415년에 처음으로 경주에 좌병영을 설치하였다가 1417년에 울주(蔚州)로 옮기었다. 이어 경상 좌·우도의 분합(分合) 과정에 의하여 1426년(세종 8)에 우병영과 합하여졌고, 1436년에 다시 좌도와 우도의 행정구획체제로 굳어지면서 1437년에 좌병영으로 분리되어졌다.

좌병영에는 종2품의 병마절도사가 있어서 아장(亞將)인 종3품직의 우후(虞侯)를 비롯하여 군관(軍官)·아전(衙前) 및 노비·공장(工匠) 등을 거느리고 유방군(留防軍)을 영솔(領率)하였다.

병영의 주된 임무가 국방에 있었던 만큼 지방군의 군사훈련과 습진(習陣) 및 성보(城堡) 등 군사시설의 유지에 힘써 외적 침입에 대비하였고, 나아가 포도(捕盜)○내란방지(內亂防止) 등 치안유지에도 힘썼다.

좌병영의 재정은 비변사에서 관할하는 산성미(山城米)와 각곡(各穀)으로 1만 3,562석과 갑주가미(甲胄價米) 4,851석, 그리고 병영이 관할하는 별호미(別戶米)가 1,092석이었다.

특히 좌병영에 속하는 마병(馬兵)들은 해마다 고시를 보게 하여 수석한 한량(閑良)은 전시(殿試)에, 차석은 회시(會試)에 바로 나아가게 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었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만기요람(萬機要覽)』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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