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4,209,908㎡. 조령은 조선시대 영남지방에서 소백산맥의 준령을 넘어 한양으로 가는 주요 통로의 하나로서, 주흘산(1,108.4m) · 부봉(釜峰, 915m) · 조령산(1,017m) 등이 이루는 장장 8㎞의 험준한 계곡이 천험(天險)의 요충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구축한 요새로 문경 조령 관문(사적, 1966년 지정)은 제1에서 제3까지 3개의 관문으로 되어 있다. 이 관문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 6월 설치의 논의가 있었으나, 전란 중의 경제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그 이듬해인 1594년 조곡관(鳥谷關)에 중성(中城), 세칭 제2관문이 설치되었다.
그 후 1708년(숙종 34) 중성을 크게 중창하는 한편, 이보다 남쪽으로 약 4㎞ 떨어진 주흘관(主屹關)에 초곡성(草谷城)을, 또 북으로 약 4㎞ 떨어진 조령관(鳥嶺關)에 조령산성을 축조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제1관문과 제3관문이다. 이들 관문은 낙동강수계에 속하는 조령천의 협곡을 이용하여 구축하였다.
제1관문은 성벽에 홍예문을 열고, 위에는 총안(銃眼)이 있는 성가퀴가 설비되어 있으며, 문루에는 ‘嶺南第一樓(영남제일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제1문은 3개의 관문 중 옛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문이다. 제2, 제3관문은 성벽만 남겨 놓은 채 홍예문이 사라진 것을 1974∼1977년의 문화재(현, 문화유산) 보수 때 복원하여 옛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다.
이들 관문과 관련하여 이 일대에는 조령원(鳥嶺院) · 동화원(東華院) 등의 원터와 진(鎭)터 · 군창(軍倉)터, 신구임(新舊任) 경상감사가 교체될 때 교인(交印)하였다는 교구정지(交龜亭址), 고려 말 공민왕이 거란의 난을 피하였을 때 행궁이 있었다는 어유동(御由洞) 등 사적지가 많고, 또 신라 문성왕 8년(846)에 초창하였다는 고찰 혜국사(惠國寺)도 여기에 있다. 조령계곡에는 여궁폭포(女宮瀑布) · 쌍룡폭포 · 팔왕폭포 등이 울창한 산림과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 식생 경관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