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사 세존괘불탱 ( ▽)

나주 죽림사 세존괘불탱
나주 죽림사 세존괘불탱
회화
유물
국가유산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죽림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괘불탱.
이칭
이칭
나주 죽림사 괘불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죽림사 세존 괘불탱(竹林寺 世尊 掛佛幀)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불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98년 06월 29일 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풍림죽림길 255 (남평읍, 나주죽림사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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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죽림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괘불탱.
개설

199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5.09m, 가로 2.63m. 원래의 제작 장소는 먹으로 지우고 그 옆에 ‘竹林寺(죽림사)’라고 적어 넣었다. 화면 중앙의 비단(2폭의 가로 118㎝) 좌·우로 모시를 이어 붙였다. 6폭을 잇댄 이 괘불탱처럼 밑바탕 재료가 혼용된 경우는 드물다. 수인(首印)과 신헌(信軒)의 두 화사(畵士)가 1622년(광해군 14)에 제작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괘불탱 중에서 가장 작은 화면 크기(세로 4.34m, 가로 2.43m)에 속한다. 단독 석가불좌상이 그려져 있다.

내용

연화대좌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석가불상은 키 모양 광배(光背)를 지녔으며 왼손은 무릎에 두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모양을 하였다. 둥근 얼굴에 반개(半開)한 눈과 작은 입, 붉은 선염(渲染)이 가해진 통통한 양 볼이 특징적이다. 머리에 중앙계주(中央髻珠)는 있으나 뾰족한 육계(肉髻) 위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생략된 모양이다. 석가불은 좁은 어깨와 무릎 너비, 가는 오른팔, 투박한 손 등이 어색하지만 형태의 윤곽선은 둥근 면이 남아있다.

부드러운 녹색 광배를 배경으로 석가불상은 두 어깨를 덮은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걸쳤다. 화사한 홍색 법의와 창백한 살색을 적절하게 구성한 채색 수법은 석가불을 돋보이게 한다. 법의의 보상화문은 종래 원(圓) 안의 도안화된 문양에서 벗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신광(身光)은 연당초문에 금니(金泥)를 빈틈없이 사용한 반면, 구름에 가려진 사각대좌의 문양은 붉은 바탕에 도안화된 국화문과 당초문을 흰색의 필선(筆線)으로 나타낸 간략함도 엿보인다.

화기에 “괘불세존탱(卦佛世尊幀)”의 명칭 및 찬물대시주(饌物大施主) 등 이 불사(佛事)의 비용을 댄 시주자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현재까지 알려진 괘불탱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이 작품은 둥근 형태미와 화사하고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밝은 채색, 섬세한 필선, 풍부한 금니(金泥)의 연당초문양 등에서 1628년에 제작된 경기도 칠장사 오불회괘불탱과 유사하다. 또한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인 청연화좌에 앉은 단독 불좌상형식은 조선시대의 일반불화나 괘불탱에서는 매우 드문 예이다. 앞 시대의 불화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이 괘불탱은 자료가 귀한 17세기 전반기 불화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96-97 지정편(문화재관리국,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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