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재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학자, 박세용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2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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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박세용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2년에 간행한 시문집.
개설

박세용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석경(錫卿), 호는 죽림재(竹林齋). 아버지는 박종장(朴宗璋)이며, 어머니는 아산유씨(牙山柳氏)로 유동기(柳東夔)의 딸이다. 일찍이 관직에 뜻을 버리고 죽림재를 세워 학문 연구에 진력하여 『근사록(近思錄)』·『주자대전(朱子大全)』을 깊이 연구하였고, 글씨에도 능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1902년 박세용의 6대손 박춘욱(朴春郁)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유도헌(柳道獻)의 서문, 권말에 김세락(金世洛)과 7대손 박기우(朴起羽)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2권 1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중국국가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41수, 만(挽) 14수, 서(書) 7편, 부(賦) 3편, 설(說) 3편, 서(序) 3편, 기(記) 3편, 명(銘) 2편, 권2에 문(文) 6편, 제문 3편, 부록으로 제현창수(諸賢唱酬) 53수, 죽림재서(竹林齋序)·죽림재기(竹林齋記) 각 1편, 만사 6편, 제문 3편, 행장·가장·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의 「상학사김선생(上鶴沙金先生)」은 김응조(金應祖)에게 선조 박곤(朴坤)의 행장과 묘갈명을 부탁한 글이다. 부의 「과진양억김학봉부(過晋陽憶金鶴峰賦)」는 진양을 지나면서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키다 순직한 김성일(金誠一)의 충절을 생각하고 지은 것이며, 「강석암부(杠石庵賦)」는 아버지가 세운 독서당을 두고 추모의 정을 표한 것이다.

「국담박선생정포사정순영문(菊潭朴先生旌褒事呈巡營文)」은 저자가 살던 고을의 효자인 박수춘(朴壽春)의 효행을 칭찬하여 장려하도록 감영에 올린 글이다. 박수춘은 약관의 나이로 임진란을 만나 가족을 이끌고 산 속에 숨어 살면서도 지극한 효심으로 부모를 섬겼다고 설명하면서, 그의 영향으로 이웃에 효자가 많이 나고 풍속이 순화되었다고 하였다.

「성자설(誠字說)」은 학문의 기본이 성의(誠義)에 있고 정치의 기본이 성경(誠敬)에 있으므로, 성은 효에 통하며 경은 충에 통한다고 설명하면서, 매사를 성의를 다해 처리한다면 어려운 것이 없다고 주장한 글이다. 이 밖에 몸을 지키고 닦는 데에는 공경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말한 「경자설(敬字說)」과, 사회의 인식이 잘못되어 공중의 물건이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 해석하지만 공청과 공중의 물건일수록 잘 지키고 아껴야 된다고 한 「공자설(公字說)」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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